미국 와서 정말 생각이 바뀐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인도인들을 보는 시각이다. 한국에 있었을 때 개발자를 찾던 중 인도인 개발자를 고용해보면 어떨까 했던 적이 있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말이 안통하면 불편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아 채용 결정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에서 인도인들은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인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또 숫자에 능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인이 빠지면 모든 것이 정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대단한 제품을 만든다며 감탄하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도 결국 회사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면 제품을 개발하는 핵심 인재들은 인도인들인 경우가 많다.
인도인들의 단체 중 TiE라는 것이 있다.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지부를 둔 인도인 사업가/투자가들의 모임인데, 워낙 재정이 많고 파워가 세서, 심지어 워싱턴 DC에서 거액의 연봉을 주고 로비스트를 고용해서 H-1B Visa (한 해 발급 수가 50,000개로 제한된 취업 비자) 혜택이 특별히 인도인들에게 많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Wikipedia 에서 통계를 보면, 인도에서 전체 H-1B 쿼터의 25% 이상을 매년 가져간다.

그 뿐이 아니다. 아래 테이블을 보면 인도 회사들이 엄청난 숫자의 H-1B 비자 신청을 하고, 또 받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 2006년에 H-1B Visa를 받아 간 Top 10회사 중 무려 7개 회사가 인도에 본사를 둔 IT 회사들이다.

인도인들이 미국에서 파워 집단으로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보는 생각한 주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미국 문화에 친숙하다.
인도는 오랫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이다. 영국의 시스템이 그대로 심어져 있고, 많은 지도자들이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영국 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깊게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미국에 와서 느끼는 이질감이 적고, 한편으로 미국 사람들이 인도인에 대해서 느끼는 이질감도 크지 않은 것 같다.
2. 미국 내에 똑똑한 인도인들이 많고 대부분이 공학을 전공했다.
인도에 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학교가 있다. MIT를 본따 만든 곳인데, 11.7억 인구를 가진 인도에서, 매년 단 8,000명만 입학할 수 있다[주]. 근데 재미있는 것은, 인도에서는 그렇게 희귀한 IIT 출신들을 여기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팀에도 12명 중 두 명이 IIT 출신이다.). 인도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IIT 졸업자들을 미국으로 많이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기 온 사람들은 명문대에서 석, 박사를 마치고 하이테크 기업에 취직하거나 창업을 한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Sun Microsystems를 창업한 Vinod Khosla이다. 그외에도 Novell의 CTO Kanwal Rekhi, Cirrus Logic을 창업한 Suhas S. Patil 등 수없이 많다. 인도에서 온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인도의 학생들은 공대를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졸업 후 연봉도 높은데다 미국에서 취업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소프트웨어 회사 창업이 붐인 때엔 더더욱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3. 창업가 정신이 강하다.
어디서 나온 속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도 사람들 만나면서 창업 정신이 넘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주변 분위기 때문일까? 창업하는 회사에서 인도 사람들을 데려가려고도 많이 하고, 스스로도 창업해서 뭔가 해보겠다며 눈빛이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한 인도인 동료에게 물어보았더니 자기는 두 가지 이유가 생각난다고 했다. 첫째는 인도에 산업이 없다는 것이다. 즉, 번듯하게 다닐만한 회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소규모 상공업 (mom and pop shop)이 인기가 있다. 자기 아버지가 조그마한 샵을 경영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고, 성장하면서 회사 취직보다는 자기도 그런 걸 만들어서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논리이다. 두 번째는 유전자에 ‘창업 정신’이 박혀 있다고 한다. 내가 그런 게 어딨냐고 반박하니, 인도 출신중에 미국 동부,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국 등에 가서 사업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엄청 많다며 자기 생각엔 유전자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동의는 안하지만, 정말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만큼 인도 출신 사업가가 많은 건 사실이다. 앞서 얘기한 TiE의 존재도 인도의 창업 정신을 부추기는 큰 힘인 것은 분명하다.
4. 졸업 후 미국에 남는 사람들이 많다.
아래는 Wall Street Journal 기사에 나온 그래프이다.

2002년에 미국에서 과학, 공학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2007년에 여전히 미국에 남아 있는 숫자를 센 것이다. 한국 사람들 중에서는 41퍼센트가 5년 후까지 미국에 남아있는 것에 반해 인도는 615명 졸업생 중 무려 81퍼센트가 5년 후에도 미국에 남아 있다.
5. 영어를 잘한다.
영어가 공용어인 덕에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 한다. 억양 이상하고 발음 이상하지만 영어는 진짜 잘한다. 말하기 뿐 아니라 글쓰기도 잘한다. 인도에 수십가지 언어가 있기 때문에 인도사람들 끼리도 힌디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말을 잘하니까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고, 남들을 관리하는 것도 잘 하고, 그래서 중국, 한국 엔지니어들과 똑같이 출발해도 더 빨리 윗자리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리더십의 근본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에서 태어난 후 미국에 건너 와서 성공한 인도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실리콘 밸리의 거물 세 사람만 여기에 소개한다.
Shantanu Narayen, CEO of Adobe(어도비)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 주요 행사 때 Adobe를 대표해서 발표하는 사람은 CTO인 Kevin Lynch이다. 그렇다면 Adobe의 CEO는 누굴까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인도 사람이 CEO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기술 위주의 회사가 아니라 디자이너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인도 사람이 CEO일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찾아봤다. 인도 한 가운데 위치한 Hyderabad에서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 어머니와 플라스틱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도에 있는 오스마니아(Osmania)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오하이오에 있는 미국 보울링 그린 주립대학(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으로 유학왔다. 미국 내 순위 152의 학교이니 명문대라고 볼 수 없는 학교이다. 애플에서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그 후 실리콘 그래픽스(Silicon Graphics)에서 일했다. 픽트라(Pictra)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1993년에 버클리에서 MBA를 마친 후에 1998년에 product research의 VP(부사장)로 Adobe에 입사했다. 그 후 승진을 통해, 2007년에 43세의 나이로 연매출 3.8조에 직원 8000여명을 고용한 회사, Adobe의 CEO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현재 그의 연봉은 $875,000, 즉 9억원 정도이다.
Sanjay Jha, CEO of Motorola(모토롤라)
인도 동쪽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영국 리버풀(Liverpool)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스코틀랜드의 University of Strathclyde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과 샌디에고(San Diego)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94년에 퀄컴(Qualcomm)에 조인했고, 들어간 지 4년만에 SVP(senior vice president of engineering)로 승진했고, 2006년에는 COO가 되었다. 들은 얘기로는 퀄컴 내에서 계속해서 혁신을 일으키는, 파워가 아주 강한 임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8년 4월. 꺼져가는 모토롤라의 등불을 살리기 위해 모토롤라에서 그를 CEO로 영입했다.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따르면 연봉은 48만 달러(약 5억여원)이며, 주식 등을 포함해서 모토롤라에서 총 $100 million (1100억원) 정도를 보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모토롤라의 드로이드(Droid) 폰을 처음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감이 넘쳤고, 모토롤라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Thomas Kurian, EVP of Oracle(오라클)
썬 마이크로시스템이 오라클에 합병되면서 우리 팀이 이 사람이 담당하는 그룹으로 들어가게 되어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러니까, 오라클에서 무려 직원 2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현재 나이는 42세인데, 매출 25조원 회사의 EVP라니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CNET에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 태어나 쌍둥이 남동생 둘과 함께 단돈 400불을 가지고 미국에 건너왔다. 공부하며 일하며 열심히 노력한 끝에 미국 최고 명문대학인 프린스턴(Princeton) 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학비를 조달하면서도 수업은 최대한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스탠포드에서 MBA를 마쳤다. 맥킨지에 입사해서 런던, 브뤼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한 후 오라클에 입사했고, 지금은 오라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사업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다. 정확한 연봉은 모르겠지만, CEO인 Larry Ellison의 연봉이 $63 million (700억원)임을 고려하면 꽤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인도의 이민 역사가 길어지고,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는 인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이 가진 재산과 영향력도 점차 커져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학군이 좋다는 도시(Sunnyvale, Fremont, Cupertino)에 가보면 인도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살고 있다. 미국에서 인도인의 역할이 그 어느 곳보다도 중요한 곳, 이곳은 실리콘밸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