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 2011

스테파니 파커, 한국 문화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이제 한국 문화의 전도사가 되다

스탠포드대학 정치 및 커뮤니케이션 전공 대학원 1학년 스테파니(Stephanie).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약 2년 반 전인 2009년 여름이었다. 매년 여름,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국, 일본, 타이완의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미국 영어 및 문화 교류(American Language & Culture)“라는 4주짜리 프로그램을 하는데, 스테파니는 그 프로그램에서 스탠포드대 자원봉사자로서 프로그램 진행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잘 아는 후배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 후배를 데려다주었다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정말 많았고, 당시 인기 있던 한국 가수나 드라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잠깐 만났던 것이 인연이 되어 나도 다음 해에 그 프로그램에서 패널리스트로 참가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녀를 만나 안부를 서로 묻곤 했다.

최근, 스테파니를 마운틴뷰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이제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생이 되었고, 곧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싱가폴로 갈 예정이란다. 어떤 일이길래 싱가폴에 가느냐 물었더니, 동영상에 각 나라 말로 자막을 달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startup)에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일할 계획이란다. “비키(Viki)를 말하는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비키(Viki)라면 내가 잘 아는 호창성 선배가 만든 회사이고, 최근 한국과 미국의 유명 VC들로부터 약 200억원의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어 공부도 해서 이제 한글도 잘 읽었고, 안그래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번 일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며 흥분해 있었다.

어떤 계기로 한국 문화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졸업 후 첫 진로를 Viki로 정했을까? 궁금했다. 마운틴뷰의 한 스타벅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성문: 간략하게 소개를 해줄래요?

스테파니: 안녕하세요? 스탠포드대를 지난 6월에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부 때 대학원 수업을 미리 수강해놨기 때문에 보통 2년이 걸리는 대학원 과정이지만 약 6개월만 더 하면 졸업하게 됩니다.

성문: 한국 문화와 드라마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스테파니: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LA에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주변에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미국 팝스타들을 좋아했는데, 한국계 친구들은 한국 가수나 연예인들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K-POP 콘서트에 가고 노래방에 가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그렇게 좋아하나 궁금했지요. 그래서 당시에 가장 친했던 친구인, 지금은 하버드대학에 있는 글로리아 이(Gloria Eee)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웹사이트를 하나 알려줬어요. 숨피(Soompi)는 사이트인데, 거기 가니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더군요. 숨피를 통해 전에는 존재하는 지조차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거든요. 그렇게 무언가에 빠져본 적이 없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에 저처럼 아시아인이 아닌데 한국 가수를 좋아한다고 하면 미국 친구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죠. 남자 배우를 보고 여자같다고 놀리기도 했구요. 숨피를 통해 오프라인 모임을 주최하거나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런 모임을 통해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다가 콘서트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처음 갔던 것이 2006년에 있었던 YG 패밀리 월드 투어였어요. 빅뱅이 그 때 공연했던 기억이 나요.

성문: 고등학교 때라 대학 입시 준비로 바빴을텐데 어떻게 그 모든 걸 할 시간이 있었나요? 게다가 스탠포드대에 입학했잖아요. 대단한걸요?

스테파니: 사실 말씀드리면 타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스탠포드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과, 다른 언어를 배웠다는 것, 이런 경험을 통해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거든요. 솔직히 원래는 재밌어서 했던 것뿐이었지만요 (웃음).

성문: 스탠포드의 입학담당자들이 보는 눈이 있었군요. 하하.

스테파니: 근데 입학해서 보니 학교에 저 같이 한국 문화에 관심 많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인 친구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스탠포드대학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래서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학생들을 많이 뽑은 것 같아요.

성문: 고등학교 때의 경험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요?

스테파니: 숨피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보니 아시아인들에 대해 정말 잘 알게 됐어요. 길가다가 주변을 보면 아시아인들이 더 눈에 잘 띌 정도였죠. 아시아인들을 보면 더 반갑기도 했구요. 한편, 숨피에서는 가수 ‘비’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썼는데,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를 한국계 미국인인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한글로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했어요. 신비로운 경험이었죠. 나중에 스탠포드대에서 이를 주제로 한 논문을 쓰기도 했어요. 전에는 태어난 마을이나 쓰는 언어, 또는 인종에 의해 정체성이 결정된다면, 이제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결정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선택할 수 있다는 옵션이 있다는 것은 좋은거에요. 태어난 환경에 의해서만 정체성이 결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그러한 환경을 찾아서 선택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지요.

성문: 스탠포드대 합격 비결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스테파니: 스탠포드대학은 시험 성적 뿐 아니라 에세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특히 성장 과정이 잘 녹아들어 있는 에세이요. 저는 소극적고 자신감이 없었던 한 아이가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어요. 어렸을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었거든요. 제 어머니는 백인이었고 아버지는 흑인이었어요. 그래서 외모는 흑인이었지만 저는 다른 문화 속에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흑인들만 쓰는 독특한 억양이 있거든요. 그런 억양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제대로 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친구들이 바로 알아차리고 인정을 안해줬죠. 제가 너무 고상한 단어들을 쓴다며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제가 과연 어떤 그룹에서 가장 잘 인정받고 어울릴 수 있나 싶어서 이곳 저곳을 시도해보던 중 한국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한국인 그룹에 갔는데, 한국 친구들이 저를 정말 재미있어하고 환영해줬어요. 한국계가 아닌 사람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재미있었나봐요. 제가 특정한 억양을 가지고 말하기를 기대하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서 그들이 실망하는 것을 보는 것 보다는, 제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서 그들이 놀라며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게 확실히 더 좋은 느낌이었죠.

성문: 비키(Viki)와는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스테파니: 예전부터 비키의 팬이었고, 몇 번은 직접 자막을 달기도 했어요. 나중에 스탠포드 MBA 졸업생들이 만든 회사라는 것과, 테크크런치(TechCrunch) 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올해 봄, 한 친구가 만든 회사에 조언을 해주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Viki의 라즈믹(Razmig) 대표를 만났고, 그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연결이 됐어요.  그 분이 저한테 연락해 와서 팔로 알토에서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저한테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We wanna hire you.)” 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랐죠. 저에게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고 제가 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서 싱가폴에 와서 팀을 만나보라고 했어요. 안그래도 언젠가 아시아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싱가폴에 들러 팀을 만나보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Viki에서의 저의 공식적인 타이틀은 ‘커뮤니티 매니저‘입니다.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고, 내년 4월에 대학원을 졸업하면 풀 타임으로 거기서 일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기대되요! (I am so excited about this opportunity!)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한국 팝을 접했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찾았고,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했고, 또 이제 한국 드라마를 전 세계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게 되어 정말 즐겁다는 스테파니, 그녀가 한국 문화의 ‘대사’로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테파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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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성, 세계 4위의 미디어 회사 비아컴(Viacom)의 게임 사업 개발 매니저

오늘의 인터뷰, 안우성

안우성(LinkedIn, Twitter, 블로그),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여름이었다. UCLA Anderson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UCLA MBA를 지망하는 안우성이라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에, 어떻게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만나고 싶고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가 간략히 적혀 있었다.

당시에는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한 달쯤 지나 한국에 방문할 일이 있으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둘 다 일정이 바빠 7월 초, 아침 8시 반에 서울대입구역 스타벅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말쑥한 외모에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분명히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훨씬 좋은 학교에 합격해서 UCLA에 안 온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다시 그에게서 연락을 받은 것은 몇 달이 지나서 이듬해 1월이 되어서였다. UCLA 앤더슨 스쿨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며, 감사의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었다. 몇 달이 지나 5월에 그가 LA에 도착했고, 나는 여름 인턴십을 위해 한창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학교 시작하기 전에 LA의 한 소셜 미디어 관련 스타트업에서 미리 무급 인턴십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가 시작되기도 전에 누구보다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소셜 미디어도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리더십 역할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이내 그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내가 2학년 때 학생회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차기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마이클(Michael)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마이클: “성문, 혹시 우성 알아?”
성문: “응. 물론 알지. 그가 앤더슨 스쿨 입학하기 전부터 알았는걸”
마이클: “나 그 친구 존경해. 사실, 우성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내 이미지를 바꿔놓았어.”
성문: “무슨 이야기야?”
마이클: “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수줍어하고, 그렇게 활동적이지 않고, 더구나 리더십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서 하는 것을 못봤거든. 그런데 우성은 너무나 열심인데다가 각종 클럽에서 리더십 역할도 맡아서 하고 있잖아. 한국 사람들이라고 다 조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거지.”

정말 그랬다. 그는 웬만한 미국 학생들보다도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몇 달이 지나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리쿠르팅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알고 보니 우성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첫 이메일에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있다던 그는 네트워킹과 노력을 통해 미국 사람이라도 들어가기 힘든 매출 18조원의 기업 NBC 유니버설과 매출 40조원의 기업 디즈니에서 봄, 여름 인턴십을 했고, MBA를 마친 후에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비아콤(Viacom)니켈로디언 게임 그룹(Nickelodeon Game Group)에서 사업 제휴를 담당하고 있다. 니켈로디언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면 꼭 시청하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케이블 채널이다. 교육용 어린이 만화인 ‘탐험가 도라 (Dora the Explorer)‘가 니켈로디언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10년간 장기 방영하며 미국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스폰지밥(SpongeBob)‘ 역시 니켈로디언에서 만들었다.

미국의 인기있는 교육용 어린이 만화,

그는 또한, 내가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2008년 어느날, 앤더슨 스쿨의 학생 라운지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한 말이다.

형, 블로그 시작해 보세요. 정말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제가 했던 중 가장 보람있는 일 중 하나였어요.

그 말을 듣고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 때 그가 했던,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토요일 점심, Burlingame 다운타운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성문: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탐험가 도라의 목소리가 들어간 GPS 기기

제가 하는 일, 즉 비즈니스 디벨롭먼트(Business Development)의 영역은 크게 라이센싱(Licensing)과 배급(Distribution)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라이센싱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이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배급은 남의 것을 내가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같이 컨텐츠를 가진 회사는 캐릭터, 게임 등의 라이센싱을 통해 주로 돈을 벌 수 있고, 그 중 저는 게임과 관련된 라이센싱을 담당합니다. 요즘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 또는 타블렛 게임에 들어가는 캐릭터 계약이 많습니다. 동시에 제가 배급 계약도 담당하는데, 니켈로디언이 미디어를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V 채널, Nickelodeon.com, 또는 게임 포털 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채널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거나 컨텐츠를 공급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디어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이와 같이 IP(Intellectual Property)와 미디어 채널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디즈니 하면 대부분 미키 마우스를 먼저 떠올리고,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팔아 돈을 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오는 매출은 사실 크지 않습니다. Disney.com, ESPN, ABC 등 자체적으로 보유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 다음 수익원이 테마 파크, Pixar와 같은 영화사 등이지요. 결국 자신의 컨텐츠를 팔아서 돈을 벌고, 또 남의 컨텐츠를 실어줘서 돈을 벌고, 이렇게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예를 또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회사가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봐요. 그리고 그 회사가 기존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저희가 가진 캐릭터를 사용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저희 캐릭터를 썼다면 그 장난감을 어디에 광고할 때 가장 효과가 클까요? 그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바로 저희 웹사이트와 TV 채널이겠지요. 그런 식으로 두 가지 계약을 할 경우 수익이 극대화됩니다. IP와 미디어를 보유한 회사만 할 수 있는 일지이요.

성문: 학부 때 전공이 건축학이었는데, 지금 전혀 다른 길로 왔네요?

제가 사실 과학고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3년동안 과학을 공부하고 나니 다른 쪽이 하고 싶어졌어요. 피를 봐야 하는 의사가 되기는 싫었고,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있고 너무 공학적이지도 않은 건축학을 공부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더군요. 당시가 IMF 직후라 주택 프로젝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설계도의 아파트만 계속 짓고 있었고, 게다가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연륜이 필요해서 어릴 때는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구요.

반면, 인터넷 분야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이면 즉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엔씨소프트에서 운 좋게 병역 특례로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일을 해보니 정말 재미도 있고 가능성도 높은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인생의 모토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자”인데, 꼭 집을 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말고도 온라인 공간을 통해 즐거움을 전달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엔씨소프트에서 처음 맡은 일은 해외 온라인 게임을 수입해서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리니지 2 팀의 다섯 번째 멤버로 합류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2003년 당시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서 만든, 굉장히 덩치가 큰 프로젝트였는데, 마침내 게임이 성공적으로 런칭되어 한 달에 100억원 이상을 벌게 되었고, 온라인 게임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지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런 점에서 엔씨소프트에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성문: 그 다음에는 일본에서 일을 했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그렇게 3년간 리니지 2 등 온라인 게임의 마케팅을 담당하던 중, 일본 지사장님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서 인터뷰를 했고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일본 지사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블로그였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런 개인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당시 일본의 전설적인 VC인 조이 이또(Joy Ito)디지털 거라지(Digital Garage)를 공동창업하고 나서 초창기 블로그 플랫폼인 무버블 타입(Movable Type), 테크노라티(Technorati) 등을 들여오며 블로그가 큰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미 2007년에 일본 사람들이 트위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저는 2007년부터 트위터를 쓰기 시작했지요. ‘오타쿠’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각 영역마다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매우 세분화된 취미를 남들에게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그런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문을 가지게 됐고, 한 번 게임 전문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일하면서 블로그를 키워갔고, 마침내 그 블로그가 일본 내에서 게임 카테고리 1등을 했습니다. 일단 그러한 미디어 채널을 가지게 되니 게임 홍보도 훨씬 쉬웠고, 유저 충성도를 관리하기도 쉬웠지요.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셜 미디어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미래가 가게 될 방향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성문: 미디어플록(Mediaflock)이라는 블로그 사이트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원래 2000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2005년에 일본에 가서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자, 먼저 블로그에 대해 이해를 해야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으면서 일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당시 가까운 친구였던 김동신(현재 파프리카 랩 CEO)에게 같이 시작하자고 했지요. 당시 한국에서는 TNC(테터 앤 컴퍼니, 후에 구글에 인수됨)의 노정석 대표님이 만든 태터 툴즈에 전문 블로거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블로그에 달린 광고 수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또, TNC의 김창원 공동 대표님이 일본 지사를 운영하기 위해 몇 달간 일본에 나와 있었는데, 그 분과 대화하면서 블로그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블로그를 통해 멋진 사업가들도 알게 됐고, 저와 다른 공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그 이후 보람을 느껴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성문: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MBA를 결심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건가요?

우성: 소셜 미디어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미래의 큰 변화(Next Big Thing)는 미국에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게임, 포털 등의 선진 서비스를 한국과 일본에서경험하고 나니, 이를 미국에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마침 아내가 USC에서 박사 과정중에 있어 LA에 가고 싶었고, UCLA를 선택했습니다. 실리콘 밸리와 할리우드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어요.

성문: 특이하게도 MBA 시작도 하기 전에 LA에 위치한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일을 했었네요. 어떤 계기였나요?

아내 때문에 LA에 좀 일찍 도착했습니다. 아무 일도 안하니 일주일만에 심심해지더군요. 학교 수업 시작할 때까지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공짜라도 좋으니 스타트업에서 한 번 일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LA지역 스타트업들이 꽤 있더군요. 무조건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없을 때는 webmaster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거기서 약 4개월간 인턴을 했습니다. 다행히 그 회사가 잘 커서 지금은 페이스북 공식 광고 벤더가 되었습니다. 이런 미국의 스타트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인들도 들어가기 힘든 디즈니에서 여름 인턴십을 했는데, 비결이 뭐였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네트워킹의 결과였습니다. MBA 시작하기 전부터 네트워킹을 했지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고, 사람들을 만나 저에 대해 소개하면서 피드백을 받으니 도움이 많이 되어서 피칭 연습도 할 겸 해서 계속 만났습니다. LinkedIn에서 랜덤하게 찾아서 연락하기도 했구요.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한 명씩 만났었네요. 1학년 때 50명도 넘게 만났고, 그러는 과정 중에 많은 사람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만났지만, 나중에는 나를 옹호해줄 멘토(Mentor)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9년 당시 잡 마켓(job market)이 안좋았기 때문에, 여기 저기 찌르는 대신 나는 더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 왔던 것을 레버리지(leverage)할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어 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에서의 경험도 일일이 다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할만한 경력을 간추려서 이야기했고, 전에 했던 일과 앞으로 하려는 일이 다른데 그 둘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잡 디스크립션(job description)을 자세히 보고, 제가 하는 말이 회사에서 원하는 것과 일치하도록 스토리도 만들었구요. 디즈니에서 채용 공고가 나자 그 회사의 임원들과도 네트워킹을 했고, 결국 세 명의 임원이 저를 추천해줬습니다. 입사해서 보니 해당 사업 부문(디즈니 산하 5개 사업 부문 중 하나인 인터렉티브 미디어 그룹)에 MBA 인턴이 한 명 더 있었는데, 헷지펀드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와튼 스쿨 출신의 미국인이었습니다. 매니저에게 저를 왜 뽑았냐고 물어봤더니 “부사장급(VP) 임원들이 추천하기에 면접을 봤는데 만나보니 추천할만한 사람이어서 채용했다”고 하더군요. 네트워킹의 승리이지요. (웃음)

디즈니에서 일하면서도 어떻게 미국 내에서 인맥을 넓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디즈니 타이틀을 달고 많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2학년 잡 써치(job search) 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풀타임(full time) 잡은 어떻게 찾은건가요?

네트워킹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 소개가 없이는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때였지요. 친구들과 함께 회사 방문 이벤트를 계획하기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터뷰를 하기도 하구요. 사실,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의외로 한 리크루터가 저를 연락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LinkedIn에서 제 경력을 보고 연락을 해왔는데, 그 때 LinkedIn의 힘을 알게 되었지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컨텐츠가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할 겁니다. 아이패드, 킨들파이어 등등 새로운 기기가 생기고 미디어가 TV에서 컴퓨터로 옮겨가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안에 핵심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컨텐트(content)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것을 알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요. 예를 들어, 똑같은 스타일만 즐기고 똑같은 댄스 가수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과 음악을 알고 즐기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호창성 대표의 viki.com은 아주 훌륭한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정말 재미있는 한국과 일본 컨텐츠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전파해주고 있잖아요.


아래는 그의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 페이지에 있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 마디 추천사이다. 컨텐츠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에, 그가 앞으로 어떤 사업 개발을 통해 컨텐츠의 가치를 높여 나갈지 기대가 된다.

“Woosung is an exceptional business development executive. Prior to Woosung’s arrival at Nickelodeon Games, I had tried unsuccessfully for several years to close a deal with Shockwave/Nickelodeon. Shortly after Woosung joined the Nickelodeon team, he constructed deal terms that met both Nickelodeon’s needs as well as Disney’s, and thus, we were able to close the deal. He is a skilled negotiator, knowledgeable in the gaming space and a pleasure to work with.”, Elliot Solomon, Director Business Development, Disney Online Studios. June 25, 2011

“안우성은 아주 뛰어난 사업 개발 담당자이다. 그가 니켈로디언 게임즈에 합류하기 전에, 나는 몇 년동안 이 회사와 계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니켈로디언과 디즈니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계약 사항을 도출했고, 그 결과 계약이 맺어질 수 있었다. 그는 노련한 협상가이고, 게임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일하기에 즐거운 사람이다.” – 디즈니 온라인 게임 사업 개발 부장, 엘리언 솔로몬. 2011년 6월 25일.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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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왜 강할까

미국은 왜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을까? 실리콘밸리에 살면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곳에서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길래 매일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이 생겨나고, 또 그것이 큰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일까? 앞서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쾌적한 날씨와 환경, 그리고 인재들이 모이는 곳

이 곳에는 인재가 많고, 인도, 중국,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인재들이 끝없이 몰려온다. 스탠포드, 버클리 대학에 미국 전 지역, 세계 각 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그들 중 다수가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는다. 매우 쾌적한 기후를 가진 동시에 사람들의 학력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세상을 바꾸는 회사들이 모인 곳, 인재들이 이런 곳을 마다할 리가 없다. 결국, 우수한 사람들 주변에 우수한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의 천국

엔지니어에게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는 것 같다. 이 곳에는 엔지니어들이 존경을 받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글래스도어(Glassdoor.com)에 가면 각 회사별로 엔지니어들의 연봉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중견기업에서 일할 경우 대개 초임이 7, 8만달러에서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곧 10만달러(약 1억 천만원)가 넘어간다. 물론 살인적인 물가와 높은 세금과 의료보험료를 생각하면 10만달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높은 연봉은 아니지만, 스톡 옵션, 주식 등으로 훗날 벌 수 있는 돈과 주 40~50시간이면 충분한 근무 조건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한 때 샌디에고에서는 “퀼리어네어 (Quillanair) 라는 말이 유행했다. 샌디에고에 본사를 둔 퀄컴(Qualcomm)이 주식을 상장하면서 부자가 된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대부분은 엔지니어다. 미국에서는 입사할 때 많은 경우 주식을 받고, 회사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스톱 옵션을 받기 때문에 회사가 좋은 가격에 상장되면 대부분 큰 부자가 된다. 구글이 상장할 때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수십억, 수백억원의 돈을 벌었다.

물론, 해고의 위험도 있다. 2009, 2010년, 경기가 좋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많은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또 다시 많은 인재들이 외국에서 몰려온다.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강한 처벌

미국은 기본적으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곳이다. 법으로 보호가 잘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미국 교육 시스템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만든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사하면 안된다고 철저히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적 재산을 귀하게 여긴다. 따라서 대기업이고, 자원이 많다고 해서 섣불리 다른 작은 회사가 만든 것을 무단으로 똑같이 만들지 않는다.

복제할 수 있다 해도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오라클은 지적 재산권 침해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어서, 어떤 사람이 만든 코드라도 함부로 가져다 쓰거나 복제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다. 회사가 도덕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침해 사실이 밝혀 지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뿐더러 소송이라도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의 가짜 애플스토어에 대한 이야기가 월스트리트 저널 첫 지면에 나오면서 미국인들한테 엄청난 웃음거리가 된 사건이 있었다 [주: WSJ].

갑을 관계는 분명히 존재, 그러나 파트너십에 가까움

한국에는 SI(시스템 통합) 사업이 많고,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철저히 ‘을’에 해당하는 SI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엔지니어가 탄생하기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도 그런 갑을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을 주는 쪽은 무조건 갑이고 돈을 받는 쪽은 을이다. 그래서 을 입장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대접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수직적 갑을 관계라기보다는 파트너십에 가깝다. 제품, 서비스와 돈을 교환하는 관계일 뿐인 것이다.

인터넷, 모바일 창업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출구(exit)가 있기 때문

왜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모바일 관련 창업이 많이 일어나고 그 중 많은 회사들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까? 그 이유는 출구(엑싯:exit)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엑싯(exit)이란, 회사가 성장해서 매각되거나 주식 시장에 상장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회사를 판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엑싯이 일어나면 창업자를 비롯한 초기 멤버들은 큰 돈을 벌 수 있고, 이는 다른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앞다투어 창업을 하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수 합병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기업들이 작은 회사들을 큰 프리미엄을 주며 한 달이 멀다하고 인수한다. 그러한 기술을 만들 줄 몰라서가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다른 회사가 만든 기술을 인력 투입이나 자본 투입으로 복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공채 제도가 없고, 직원들의 회사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회사들이 1년 내내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회사 인수를 하면 정말 우수한 인재들을 회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베테랑 투자가들의 뒷받침

회사 초기에 입사해서, 주식 상장을 통해 큰 돈을 번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플로리다에 집을 하나씩 사서 여생을 즐기고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 중 한 명이 크리스 사카(Chris Sacca)이다. 자신이 번 돈과,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2009년에 투자 회사를 만들었고 그 이후 트위터, 고왈라, 인스타그램 등을 포함하여 34개의 쟁쟁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주: CrunchBase]. 법학을 전공했고,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그야말로 베테랑 투자가이다. 바로 앞에서 설명했듯, 이 곳에서는 엑싯(exit)이 많이 일어나므로 투자한 돈이 투자가들에게 되돌아올 기회가 많다는 것도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정부 자금 지원 등의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현재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만을 흉내내려 한다면 실리콘밸리의 시스템을 절대로 복제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결국은 부실한 회사들만 잔뜩 생겨나고 그 회사들이 제대로 성장을 못해서 결국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일경제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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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스탠포드대에서 거왕 교수와 함께 음악과 기술의 만남을 연구하다

오지은 (페이스북 프로필) 씨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2009년, 스탠포드 대학 내의 한인 크리스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기술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분야였다. 나중에 자세히 물어보니, 당시에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아이폰을 이용해서 연주회를 열기도 하고 아이폰과 관련한 음악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참 신기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녀에 대해 다시 듣게 된 것은 2009년 10월의 뉴욕타임즈의 기사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당시 아이폰용 ‘오카리나 앱‘과 아이패드용 ‘매직 피아노‘로 인기를 얻었던 앱을 만든 거왕(Ge Wang) 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첫 번째 제자라고 했다. 거왕 교수에 대해서는 에스티마님이 쓰신 ‘소리로 벽을 허문다‘ 및 조선일보의 “아이폰으로 클래식을 연주하다“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설명하는 오지은씨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 등 아이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 기기를 이용한 콘서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동시에 박사 학위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그녀를 스탠포드 대학 앞의 유니버시티 카페(University Cafe)에서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패드로 연주중인 오지은씨

성문: 거왕 교수가 지금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는데, 어떻게 해서 그 교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나요?

지은: 저는 학부를 스탠포드에서 했는데, 전공이 인지 과학(Symbolic Systems)였습니다. 이 전공에서 컴퓨터 음악(Computer Music)도 한 분야로 다루어집니다. 학부 때 ‘음악 및 음향학 컴퓨터 연구 센터 Center for Computer Research in Music and Acoustics(CCRMA)‘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하나 듣게 되었는데, 원래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다 연구 분야가 재미있어 보여서 이 분야에서 연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성문: 제가 보니 음악에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12살 때부터 플루트 연주를 시작한 후 다양한 그룹에서 활동하고, 워싱턴 주에서 개최한 컨테스트에서 플루트 솔로로 3등을 해서 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지은: 6학년 때 처음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플룻은 제 학업 생활의 ‘완벽한 보완제’가 되어준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숙제를 하다가 지치면 플루트 연습을 하곤 했지요. 음악을 전공 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던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플루트 연주를 통해 다양한 음색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제가 경험하고 있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음악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에는 언제 오게 되었나요?

지은: 초등학교 5학년때 가족과 함께 워싱턴 주로 왔습니다. 거기서 고등학교 때까지 있다가 8년 전에 스탠포드에 진학하면서 이 동네로 이사왔어요. 대학원을 결정할 때에 다양한 경험을 위해 동부로 갈까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CCRMA가 박사과정을 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믿었고, 또 실리콘 밸리의 특별한 이노베이션 에너지를 느끼면서 지내고 싶어서 이곳에 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성문: 박사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앉아서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지은: 맞아요. 콘서트 기획도 하고, 남들이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도 하고, 때로는 청중들과 함께 음악을 맞춰보기도 하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박사 과정은 없을 것 같아요.

성문: 거왕 교수님은 최근 어떤 일을 하셨고, 요즘 어떤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지은: 모바일용 음악 앱 개발 회사 Smule을 운영하는 것 이외에,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거왕 교수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 할 때 ‘프린스턴 랩탑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드셨구요. 그래서 이 학교 오셔서는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것 뿐 아니라, 제스처를 사용해서 연주한다든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같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제시하는 아주 튀거나 실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지원해 주셔서 랩 분위기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성문: 이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하는 주제를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지은: 논문은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데요, 지금까지는 모바일 뮤직 및 소셜 뮤직, 즉 모바일 기술을 사용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고, 더 많이 상호 작용을 하는가를 연구했는데, 앞으로는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비디오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얻어내는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특히 저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에 관심이 많아요. 상황에 따라 웃음 소리가 달라지거든요. 이런 것은 실험실의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관찰하거나 분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클라우드에 있는 수많은 비디오들을 활용하면 새로운 방식의 연구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과 기술이 어떻게 조합될 수 있을까? 이러한 조합이 어떻게 사람이 음악을 생산하고 공유하고 소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까? 앞으로 오지은씨가 하는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서 변화를 일으킬 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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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스프링보드 48 실리콘밸리

지난 10월 21일(금)부터 23일(일), 약 48시간의 시간 동안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NASA (미 항공 우주국) 리서치 센터 안의 싱귤레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에서는 TIDE Institute희망제작소가 공동 주최한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제목은 ‘스타트업 스프링보드 48‘, 즉 그 자리에서 즉시 팀을 만들고 48시간동안 아이디어를 모아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입니다. 약 40여명이 모였는데 무려 20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 중 가장 표를 많이 얻은 아이디어 12개가 선정되고,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 CEO가 되어 팀원들을 고용해서 그 즉시 일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도 같은 주제로 행사가 열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이번 행사를 기획한 고산씨가 나와서 취지를 설명한 후에 싱귤레러티 대학의 CEO가 나와 싱귤레러티가 가진 이념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행사 취지를 설명하는 고산 TIDE Institute 대표

이 행사에 저도 비빔밥 레스토랑 아이디어를 가지고 참여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더군요. 아래는 금요일에 바로 만들어진 저희 팀 사진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에 호텔에서 일했었고, 유명한 여의도의 씨푸드 부페, “무스쿠스“의 초기 셋업에 참여한 후 현재 샌프란시스코 일식 레스토랑에서 셰프(chef)로 일하는 황익주씨와, 프렌차이즈 사업에 관심이 많아 전부터 이 분야를 연구해온 버클리대 경영학과의 장영준씨가 참여해서 정말 알차고 열띤 3일을 보냈습니다.

즉석에서 결성된 드림팀, Mix'n Bowl

서울에 이어 이번에 실리콘밸리에서 열렸고, 다음주에 또 보스턴에서 있을 이 행사를 기획하느라 정말 수고했던 네 사람을 밸리 인사이드가 만났습니다.

이번 행사를 함께 기획한 황동호, 유영석, 고산, 이지혜씨

조성문: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이지혜: NYU Stern의 MBA 과정에 재학중이고, 그 전에는 Acadian Asset Management라는 자산관리 회사에서 일하며 주식 자산 운용을 했습니다.

고산: 저는 TIDE 인스티튜트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TIDE는, 작년에 영석씨와 제가 싱귤레러티 대학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든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가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진학하기 전에 과학 기술을 통해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실리콘밸리의 이 분위기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bar)에서 만난 사람이 자신의 사업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회사에 있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에서도 분명히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역동적인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것이 그런 정신이라고 믿는데, 그 정신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유영석: 한국에서 Upstart라는 소셜 펀딩 인터넷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TIDE의 Cofounder이자 상임 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황동호: TIDE에서 교육 국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에서 MJ라는 주얼리 유통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며 재미난 일을 찾고 있던 중에 산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서울에서 열렸던 영 제너레이션 포럼 행사 기획을 함께 한 것이 계기가 되어 TIDE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조성문: 어떻게 해서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하게 되었나요?

이지혜: 저는 창업에 항상 관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회사 일때문에 실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이런 기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고산: 저는 현재 이공계 백그라운드를 가진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미국에, 54시간동안 팀을 짜서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스타트업 위켄드라는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직접 참여해본 후에 이런 것을 우리 한국인들끼리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에 열기와 관심이 많으나 같이 일할 사람들을 찾지 못해서 그 열기가 식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아쉬웠던 참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아이디어만 있었는데 이지혜씨가 구체적인 일들을 담당하면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성문: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황동호: 한국에 있으면서 원격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가장 어려웠습니다. 보스턴에서 있을 행사를 기획했는데 장소를 구하기가 힘들어 어려웠지요. 여기 저기 알아보던 중 MIT 총학생회장을 알게 되어 이메일로 주고 받으며 장소를 확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지혜: 힘든 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렇게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늘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기획하기는 했지만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옆에서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어려웠던 점이라면,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일하다보니 복잡해진 아이디어를 문서로 정리하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산: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만, 조성문, 노범준 씨 등 실리콘밸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결국 오늘에 이를 수 있었네요.

조성문: 앞으로 이루고 싶은 각자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황동호: 저는 본업에 충실할 때 시너지가 나온다고 생각하고, 지금 하고 있는 무역 관련한 일들을 계속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한편, 제가 2007년 11월 14일에 써서 지갑에 항상 넣고 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자.” TIDE가 저에게 그런 터전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비전에 공감하고 참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영석: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소셜 펀딩 회사와 TIDE 모두 그 비전에 따라 하고 있는 일입니다.

고산: 저는 한국이 실리콘밸리를 능가해서, 우리나라에서 민간 우주선을 개발하는 날을 꿈꿔 봅니다.

이지혜: 저는 우주선을 만드시면 타고 가고 싶구요 (웃음), 저는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 자라가는 것에서 기쁨을 많이 느낍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새로운 것들이 자라나고 커 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 행사와 미션을 함께 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Business savvy한 public service woman’이 되고 싶은데요, 즉 사업 감각을 이용해서 공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고산: 그렇다면, ValleyInside에 대해 가지는 조성문씨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조성문: 제 블로그에서도 밝혔듯, 저는 블로그를 쓰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많이 영감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 사는 사람,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받은 영감을 전달해주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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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에는 트랜스링크 캐피털의 Jay Eum 파트너, 월든 인터네셔널의 Phil K. Yoon 이사 등이 참여, 매우 실질적인 조언을 해 주어 더욱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심사중인 모습

최종 1등은 EduFight 팀이 차지했습니다. 교육과 게임을 연결시켜 아이들이 재미를 누리면서 배우게 하자는 취지인데, 48시간만에 게임을 기획하고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후, 이를 들고 나가 실제 미국의 한 어린 아이에게 해보도록 하고, 그 부모가 “이런 게임이라면 다운로드하겠다.”고 말한 것을 영상에 담아와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1등을 차지한 팀, EduFight. 에버노트, 야후, 이베이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다음주 말에 있을 보스턴 행사가 또 창업에 열정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모이는 좋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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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마케팅 전략팀장, 조용범

조용범(www.facebook.com/ybjoe, @benjaminjoe), 그의 또 다른 이름은 Benjamin Joe(벤자민 조)이다. 밸리인사이드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로 그를 선택한 것은, 그의 삶을 통해 필자가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런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할 가치 있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알려질 인물이기에 여기서 발굴해서 알리고 싶었다.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팔로 알토의 페이스북 본사 사무실에서 하워드님과 함께 그를 만났다. 한 바퀴 돌며 페이스북 사무실을 구경했는데, 칸막이 없이 뻥 뚫린 책상 배치와, 스타트업 분위기를 내기 위해 천장을 없애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첫 회사 생활을 IBM에서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를 제외한 첫 사회 경력은 대학 1학년 때 친구와 만든 LuxforLess라는 스타트업에서 시작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 더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IBM에서 약 5년간 일하다가 하버드 경영대학원(HBS)에 진학했고, 벤처캐피털과 페이스북에서 여름 인턴십을 하고 MBA를 마친 후에 맥킨지 실리콘밸리 오피스에서 근무했다. 2년간의 컨설팅 경력 후에 지금 일하는 곳은 페이스북이다. 그의 현재 직함은 글로벌 고객 마케팅 전략팀장 (Strategist, Global Customer Marketing)이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페이스북의 한 회의실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페이스북 마케팅 전략팀장 조용범 (Benjamin Joe) 인터뷰

현재 페이스북에 하는 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저는 현재 페이스북의 마케팅 전략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특히 테크놀러지 관련 회사와 아마존과 같은 e-commerce 회사들을 위한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페이스북의 social commerce 관련 비젼을 수립하고 관련 파트너사들을 발굴하고 협업하는 일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원래 IBM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경력을 쌓아가다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왜 MBA를 선택하게 되었는지요?

당시 IBM 에서의 회사생활이 즐겁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좋아서 회사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아내의 권유와 주위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시장에서 일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하기에,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비즈니스 스쿨을 지원하게 됐습니다.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합격을 했네요? (웃음) 비결이 뭔가요? 지금 돌이켜봤을 때, 당시 학교 입학 담당자가 조용범씨의 어떤 점을 높게 평가했던 것일까요?

운이 좋았지요. (웃음) 유학을 도피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훌륭한 분들에게 좋은 추천서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떠나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을 권유해서 추천서를 받아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독려하면서 추천서를 써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에세이 주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대부분 지원자분들이 1-2개월에 걸쳐 쓴다고 들었어요. 전 거의 6개월 넘게 에세이를 썼죠. 그러다 보니 제 장점과 단점, 그리고 개인적으로 발전해 나가야할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고 그걸 에세이에 표현할 수 있었어요. 아마 학교에서 그런 면을 좋게 봐준것이 아닐까요?

MBA 1학년 인턴십으로 벤처캐피털을 선택했는데, 왜 벤처캐피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요?

제가 MBA 진학할 때, 하고 싶었던 것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VC(벤처캐피털)이었고, 또 하나는 컨설팅이었습니다. 제가 IBM에 있을 때 영업 일을 했었어요. 영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전쟁터에 최전선에 서서 전술을 실행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보니, 이번에는 한 발짝 떨어져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며 전략을 짜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기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VC에서 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구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기도 어렵지만, MBA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는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모두가 선망하는 회사인 맥킨지의 실리콘밸리 오피스에 취직을 했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저는 남들만큼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력을 남들보다 더 많이 합니다. 컨설팅 준비하는 동안에, 맥킨지 실리콘밸리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매주 이메일을 보내며 조언을 구했고, 커피 마시자고 말하면 보스턴에서 여기까지 날아와서 식사를 하기도 하는 등, 공을 많이 들였어요.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조용범씨 너무 샤프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그러던데요?

아, 그 분들은 저를 아직 잘 모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웃음)

뭔가 하고 싶은게 있으면 목표를 확실히 정한 후 집중해서 그것을 추구해왔던 것이 오늘날에 이르게 한 것 같군요.

주변을 살펴보면, ‘이것이 하고 싶다’, ‘저것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정말 하고 싶다면 엄청난 노력을 들일 것이 분명하거든요. 말로만 이야기하며 행동이 따르지 못한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남들이 보면 너무 시간 낭비한다거나 너무 집중한다싶을 정도로 몰입하는 스타일입니다. 예를 들어, 맥킨지 인터뷰를 하러 왔을 때 즈음, 저는 이미 여기서 저를 인터뷰하기로 한 사람들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이미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었거든요.

우와, 대단한 집중력이네요. 제가 미국에서 학교 졸업 후 취직에 성공하는 사례를 많이 봤지만 그 정도까지 집중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네요.

맥킨지에서 페이스북으로 회사를 옮기게 된 것도, 그런 노력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는 사람 한 명을 통해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소개받아서 이야기하거나 만났었고, 결국 공식 인터뷰를 할 때 즈음엔 모든 사람들이 저를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취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팁이군요. 조용범씨 경력을 보면, 대학 1학년 때 창업해서 6개월간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어찌보면 지금의 길트 그룹(Gilt Groupe: 값비싼 명품의 재고를 멤버들에게 파는 방식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 모델 비슷한 건데요, 당시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이탈리아 명품을 생산하는 공장들과 좋은 인맥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재고들을 한국에 가져와서 팔면 사업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공장 입장에서는 재고를 처리할 수 있어서 좋고, 한국 고객들은 명품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구요.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는데 꽤 잘 사업이 잘 되서 돈을 괜찮게 벌었어요.

이 사업을 하며 엔젤 투자를 몇 군데에서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중 한 분이 조직 폭력배에 연관이 있었던거죠. 4개월쯤 지나자 순익분기점을 지나며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어느 날 그 분이 저와 제 사업 파트너를 강남의 한 지하로 부르시더라구요. 그러더니 하는 말이, “오늘부터 이 회사는 제가 갖겠습니다.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집에 돌아가세요.” 하는겁니다.

그 말을 듣고 겁에 질려서, 회사를 무조건 넘겨주기로 친구와 합의하고 이 일을 무덤까지 비밀로 갖고 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학교 생활로 돌아왔지요.

재미있네요.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이야기인데 이렇게 공개해도 되나요? (웃음)

이제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요.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걸 하더니 결국 꼴 좋네.”라는 반응을 보이길래 기분이 상해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러던 차에, 미국에 와서 벤처캐피털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우연히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됐어요. 듣더니 그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아마 이 스토리가 아니었다면 취직 못했을거에요. 그들 입장에서는 창업가들이 VC를 꺼려하고 엔젤 투자자에게 돈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거든요. 저더러 꼭 이 이야기를 다른 창업가들에게 해주어서 엔젤 투자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꼭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창업가 입장의 진짜 스토리를 가지고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거네요? 당연히 좋아했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 이야기를 사람들하고 했나요?

페이스북에 와서도 그 얘기를 했죠. 워낙 창업 정신이 강한 회사이기 때문에 사업한 경혐이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거든요. 이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어썸 스토리(Awesome Story)라며 너무 좋아하죠.

재미있는 이야기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요즘 MBA 지원 시즌입니다. 최근에 MBA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학교 졸업 후 약 2년이 지난 지금, 미국 MBA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준다면요?

아까 드렸던 말씀과 비슷한데, 도피성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지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안들어서 유학을 탈출구로 삼는다면, 그것이 과연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지금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며 인정을 받은 후에,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마음으로 유학을 격려해주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MBA에서 가장 크게 얻는 것 중의 하나가 다양한 뛰어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열린 사고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기 때문에, 남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 생활도 성공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MBA란, 교실에서 교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 목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므로, 어떤 교수가 유명하기 때문에 그 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클래스 동기들을 통해 얻고 배우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거든요.

그 말에 공감이 정말 많이 되네요. 조용범씨가 말한 대로 MBA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분들을 저도 종종 만나거든요. 참, 얼마 전에 TEDxHanRiver라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주최하는 TED 행사에서 키노트 연설을 했었다고 알고 있는데, 주된 내용이 무엇이었나요?

왜 우리 나라에서 성공적인 소셜 비즈니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즉 소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을 많이 보기 어려워요. 요즈음의 소셜이란 것이 정말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이, 전에는 온라인에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정보 위주였지만, 요즘엔 어떤 행동들을 같이 할 수 있잖아요. 소셜 게임이 그 중 하나의 예이구요. 요즘엔 음악을 같이 들을 수 있고, 이제 곧 영화도 소셜 플랫폼 위에서 같이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하는 많은 사회적 활동들이 하나씩 온라인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이 곳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런 고민을 하는 회사들이 참 많고, 그런 회사들이 투자도 많이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8억명이 이용하는 거대한 소셜 플랫폼을 활용하기보다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노력이 더 큰 것 같아 이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소셜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회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나중에 TEDx 동영상이 올라오면 꼭 봐야겠군요. 이제 조금 더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해볼까요? 좀 추상적인 질문인데, 소셜 네트워크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요?

소셜 네트워크 개념은 이제 없어진 것 같습니다. 소셜 플랫폼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어가고 있구요, 페이스북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소셜 플랫폼을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더 쉽게 공유를 할 수 있을까입니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그런 것을 더 쉽게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앱을 만들 수 있도록 생태계를 제공하는 것에 관심이 있구요. 저보고 3년, 5년 후를 예상하라고 한다면, 그 때엔 페이스북 자체가 인터넷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즉, 사람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어떤 정보이든지,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정보보다는, 자신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생산해내는 정보를 더 신뢰하게 됨으로써 그런 정보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크 저커버그의 비전이 그 누구보다 크지 않을까 싶군요. 마지막으로, 회사 일과 별개로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쓰는 분야가 있다면요?

사실 회사 일과 가족이 제일 큰 관심이구요, 그 외에 한 가지 제가 시간을 쓰는 것이 있다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통해 소개 받아 젊고 열정 있는 창업가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분들과 이야기하며 제가 도전을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기에 그런 시간이 즐겁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페이스북 사무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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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스토어 성공의 비결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애플 스토어에 진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글들을 애플 스토어 유리에 붙이고, 그 앞에 꽃과 촛불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애플 스토어에 가득 붙은,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메시지들 (출처: @garywhitta)

사람들은 애플 스토어를 보며 스티브 잡스를 떠올린다. 마치 그것이 잡스의 초상화라도 되는 것처럼. 애플 스토어에 어떤 의미가 있길래 그럴까?

얼마전, 중국에서 가짜 애플 스토어가 들어서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BirdAbroad라는 필명을 가진 중국에 사는 한 미국인이 “스티브 잡스, 듣고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트위터, 페이스북 통을 통해 퍼지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급기야 얼마 후에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신문의 첫 면에 “Made in China: Fake Stores” 라는 특집 기사를 싣기도 했다.

중국 곤명(Kunming)의 가짜 애플 스토어. 로고, 상점 디자인 뿐 아니라 티셔츠까지도 똑같이 베꼈다.

2010년 7월에는 상해에 거대한 애플 스토어가 생겨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상해 애플 스토어 오픈 첫날,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출처: http://www.renzwertig.com/)

이어서, 홍콩에는 지난 달인 2011년 9월, 세계 최대 규모의 애플 스토어가 생겼다. 압도적인 규모이고, 오픈 첫 날 압도적인 수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M.I.C에서 올린 사진과 비디오를 보면 실감이 난다. 특히 잘 편집된 비디오가 볼만하다.

홍콩에 새로 오픈한 세계 최대 규모의 애플 스토어 (출처: http://micgadget.com)

한 때 미국을 호령했던 거대한 서점 체인인 Borders가 망하고, 미국 최대 오프라인 DVD 대여점이었던 Blockbuster도 망해가는 마당에, 애플 스토어는 오히려 갯수를 늘리고, 규모를 확장하고, 더 큰 스토어를 짓고, 그럴 때마다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왜일까? 사람들이 그 안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길가다 보면 여기 저기 보이는 애플 스토어. 애플 제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더 자주 찾게 되었다. 나는 편리함때문에 아마존 또는 애플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래도 난 애플 스토어에 간다. 팔로 알토의 매력적인 애플 스토어를 지나갈 때마다 충동을 느끼고, 샌프란시스코의 애플 스토어에 항상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고, 뉴욕 5번가를 걷다가도 애플 스토어가 보이면 꼭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아무 것도 사지 않아도 말이다.

뉴욕 맨하탄 5번가에 위치한 애플 스토어 (출처: http://news.worldofapple.com/)

무엇이 애플 스토어를 오늘날의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어떤 비밀 레시피(recipe)가 애플 스토어를 이러한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다섯 가지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매장에 직원들이 가득 있다. 보통 다른 전자 제품 가게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들어가면 즉시 누군가 와서 인사하고 맞아준다. 애플 스토어를 둘러보면 고객이 혼자 두리번 두리번 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래는, 집 근처 산타나 로(Santana Row) 근처의 애플 스토어를 찍은 동영상이다. 많은 고객들이 직원과 대화를 하고 (농담도 하고 사적인 이야기도 한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애플 스토어에 들어서는 순간 파란 옷을 입은 수많은 직원 중 한 명이 당신을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물론 당신에게 물건을 팔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둘째, 직원들이 모두 젊고, 쿨(cool)하고, 친절하다. 이는 애플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진다.
애플 스토어의 성공 비결을 잘 분석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Apple’s Retail Secret“에 따르면, 직원들 교육을 매우 철저하게 하고, 관리도 철저하다고 한다. 직원들이 커미션을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들의 목적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not to sell),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help customers solve problems)이라고 한다. 과연, 애플 스토어에 20번도 넘게 방문했던 기억을 돌이켜보니, 그 어떤 직원도 나에게 애플 제품을 하나라도 팔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그들의 질문은,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였다. 내가 새로 나온 제품에 관심이 있는지, A/S를 받으려고 온 건지, 아니면 그냥 둘러보려고 온 것인지, 악세사리를 사러 왔는지가 그들의 관심이지, 그 중 어떤 것도 나에게 파는 것이 그들의 관심이 아니었다.

애플 스토어의 직원 교육 매뉴얼에서는 “APPLE이라는 줄임말”로 그들의 서비스를 요약했다. 누가 생각해냈는지 정말 기발하다.

  • A: Approach customers with a personalized warm welcome (개인화된 따뜻한 환영의 메시지를 가지고 고객에게 접근할 것)
  • P: Probe politely to understand all the customer’s needs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공손하게 알아볼 것)
  • P: Present a solution for the customer to take home today (고객이 오늘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 것)
  • L: Listen for and resolve any issues or concerns (주의 깊게 듣고, 어떤 문제나 걱정이든지 해결할 것)
  • E: End with a fond farewell and an invitation to return (친절한 작별 인사와 함께 다시 방문할 것을 초대하는 것으로 끝맺을 것)

이 다섯 가지 리스트를 보니 감탄이 나온다. 내가 애플 스토어에 갔을 때 느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이 다섯 가지 원칙을 단순히 외워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가치와 이유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팔로 알토 애플 스토어에서 최근 일을 시작한 Nick이라는 직원에게, 어떻게 해서 여기서 일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결코 쉽지 않았어요. 무려 6번의 인터뷰를 합니다. 채용이 되고 나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마지막 단계에는 12일의 현장 실습이 있습니다. 3일간 애플 스토어에서 일하고, 6일은 매장을 떠나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훈련하며, 다시 마지막 3일은 셰도잉(다른 매장 직원을 따라다니면서 옆에서 관찰하는 것)을 합니다. 특히 셰도잉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되요.

애플 스토어 Personal Training 섹션에서 한 노부부가 직원에게 하나 하나 물어보면서 열심히 배우는 장면. 애플 스토어에서 이런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셋째, Genius Bar(지니어스 바)의 서비스가 매우 좋다. 애프터서비스를 해 주는 곳인데, 그야말로 와우(WOW) 서비스이다. 맥북이든, 아이폰이든,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라도 여기에 가져가면 된다. 품질 보증 기간 이내이거나 제품 자체의 결함일 경우 두말 없이 새 것으로 교환해주거나 공짜로 수리해준다. 이런 저런 일로 몇 번 갔었는데, 매번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한 번은 맥북의 디스플레이가 망가져서 가져간 적이 있었다. 또 수리비가 크게 깨지겠구나 했는데, 깜짝 놀라게도 공짜라고 하는 것이다. 부품의 결함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부품 공급 업체가 수리비를 전액 부담한다고 했다.

맥북 스크린이 이상해지더니 컴퓨터가 정지해버려서, 왕창 깨지겠구나 하고 갔는데 놀랍게도 수리비는 $0였다.

또 한번은 아이폰4 액정이 내 실수로 완전히 깨진 일이 있었다. 액정 수리비가 보통 $200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200불 깨질 각오를 하고 갔는데, Genius Bar에서 만난 직원이 “원래는 $200입니다. 그렇지만 공짜로 교환해드릴게요.” 처음에 내 귀를 의심할 수 없었다. 다시 물어봤는데, 정말로 무상 교환해준단다. 5분 후, 그 직원은 창고에서 박스에 곱게 포장된 아이폰 4를 가지고 나왔다. 아래는 그 때 기분 좋아 트윗했던 것이다.

액정 깨진 아이폰4를 무상으로 새 것으로 교환받은 날 기분 좋아하며 트윗했던 내용

이런 Genius Bar는 인기가 매우 많아 반드시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예약은 10분 단위로 받는다.

Genius Bar 예약 화면

이 곳이 애플 스토어의 Genius Bar이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다가 생기는 어떤 문제라도 여기에 가져가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넷째, 눈길을 끄는 매장 디스플레이이다. “반값 세일”, “신제품 출시 임박” 등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깔끔하면서 재미있는 디스플레이로 눈길을 끈다. 아래 몇 가지 예이다.

2009년 11월, 팔로 알토 애플 스토어의 크리스마스 디스플레이. 앱을 이용해서 트리를 만들었다.

맥북 에어가 가볍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출처: http://www.best-anti-spyware.com/)

마지막으로, 어디서 구매하든지 애플 제품은 가격이 같다. 요즘, 매장에서는 구경만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다음에 나중에 구매하거나, 그 즉시 폰으로 구매하는 것이 보통인데, 맥 제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어디서 사든지 가격이 같기 때문이다. 물론 아마존에서 사면 주 정부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싸지기는 하지만, 그 경우를 제외하면 굳이 온라인으로 산다고 싸지지 않는다. 그래서 매장에 들러 그 즉시 구매하면서도 남들보다 비싸게 주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따라서, 애플 스토어에 가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손에 제품을 하나씩 사서 들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경우,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해 비싼 땅에 오프라인 스토어를 위해 만드는 경우가 있다. 서울 명동이나 강남의 한복판에 있는 의류 매장들은 물론 많은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돈을 벌지만, 때론 비싼 임대료 때문에 돈을 잃으면서도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애플 스토어들은 모두 임대료가 비싼 요지에 위치해 있다 (뉴욕 5번가 스토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애플 스토어는 모두 수익을 낸다고 한다. 아래 비디오는 2006년에 뉴욕 맨하탄 5번가(전 세계 명품점들이 모두 모인, 맨하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중 하나이다.)에 애플 스토어를 지었을 때, CNBC에서 스티브 잡스를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이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야기한다. “정말 돈이 많이 드는 이번 스토어를 만들면서 다소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돈을 벌지 못하는 플래그십(flagship) 스토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애플 스토어는 하나도 빠짐 없이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이번 맨하탄 애플 스토어의 경우, 24시간 열려 있게 될 것이며, 300명의 직원이 일하고, 그 중 절반인 150명이 지니어스 바(Genius Bar)에서 일합니다. 새벽 2시에 영화를 편집하다 문제가 생겼다구요? 그럼 여기로 오면 됩니다.”

애플 스토어를 성공으로 만든 인물, Ron Johnson

2011년 6월 15일의 WSJ 기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동안 애플 스토어 전체 326개 매장을 방문한 사람 수가 디즈니 테마 파크를 1년간 방문하는 사람 수(6천만명)보다 4배가 많았으며, 단위 면적(1 sqft)당 매출은 $4406로, 고급 다이어몬드 보석을 판매하는 티파니의 단위 면적당 매출 $3070을 크게 앞선다. 아찔할만큼 경이로운 실적이다.

이런 천재적인 아이템, 애플 스토어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처음 아이디어는 스티브 잡스의 머리에서 나왔을 수 있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전략을 실행했던 사람은, 애플에서 일하기 전에는 Target의 부사장이었고, 지금은 JCPenny 백화점의 CEO가 된 52세의 Ron Johnson이었다. 그는 2000년에 애플에 옮겨와서 Genius Bar, 매장 디자인, 애플 스토어 직원 교육 매뉴얼 등, 애플 스토어의 핵심적인 것들을 만들었으며, 2007년에는 70만주의 스톡 옵션을 행사해서 $112M(약1200억원)의 큰 돈을 벌기도 했다(주: Wikipedia). 2011년 6월 14일, 그가 애플을 떠나 JCPenny의 CEO가 될 예정이라는 발표가 있자마자 JCPenny의 주가가 하루만에 무려 18%가 상승했으니, 그가 애플을 위해 이룬 업적은 많은 투자가들에 의해 인정받은 셈이다.

Ron Johnson의 CEO 선임이 발표된 2011년 6월 14일 당시의 JC Penny 주가 변동. 하루만에 무려 18%가 상승했다.

마지막으로 아래는, 2001년에 스티브 잡스가 직접 나와 애플 스토어의 컨셉을 하나 하나 설명하는 비디오이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영혼은 애플 제품과 애플 스토어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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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플랫폼 위에 지어진 비즈니스, Airbnb

이게 Air bed이다. 공기를 불어서 만든 침대.

최근 화제가 되었던 회사가 또 하나 있다. Airbnb. 2008년에 “Airbed & Breakfast”라는 제목으로 TechCrunch에 기사가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던 서비스인데, 얼마전 $100M(약 1000억원)의 투자를 받으면서 $1B(약 1조원)의 회사 가치가 매겨진 것이다 (“Airbnb, 1조원 가치 도달“)

AirBnb는 “Air Bed and Breakfast”를 줄여서 만든 이름이다. Air Bed란 평소에는 접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바람을 넣어서 쓰는 침대를 말하고, Bed and Breakfast란 말 그대로 하루 밤 묵을 침대와 아침 식사를 제공해주는 숙소를 의미한다. AirBnb는 자기 집의 일부 또는 방 하나를 여행자를 위해 빌려주는 개인(다시 말해 민박)과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여행자를 연결해주는 사이트이다. 내가 AirBnb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난 2월 14일에 보았던 TechCrunch의 Airbnb hits 1 million nights booked (Airbnb를 통한 예약 100만일 도달)이라는 기사를 통해서이다.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봤었는데, 참 깔끔하게 잘 만들어서 언젠가 한 번 써봐야지 하고 있었던 차였다.

Airbnb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회사에서 만든 아래 동영상을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집의 마루, 뉴욕의 유명한 스파 위층에 있는 방 하나짜리 집에서부터, 나무 위에 지어진 집, 유럽의 성, 보트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개인 소유의 섬에 이르기까지, Airbnb에서 모두 예약할 수 있다.

얼마전, 이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다. 아내와 함께 주말을 이용해서 몬터레이(Monterey)와 카멜(Carmel-by-the-sea)에 다녀오려고 호텔을 찾아봤는데 맘에 드는 호텔은 300불이 넘는데다 예약도 거의 다 차서 고민하던 차에 Airbnb가 떠올라서 한 번 검색해 보았다. 정말 매력적인 장소들이 많이 있었다. 몇 개 살펴보던 중 한 집이 눈에 띄었다. 자신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신뢰가 갔고, 무엇보다 40여개의 리뷰 모두 내용이 좋았다.

주말동안 우리가 묵기로 한 몬터레이 바닷가 근처의 집

예약하고 나니 주인으로부터 간단한 이메일이 왔다. 자기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주차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도착 당일에는, 밝고 친절한 목소리의 집주인 Erika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 문제가 없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은 후, 문자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와인 사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가는 길에 마켓을 찾아서 들러서 사갈까 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에리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집에 남는 와인이 있으면 나한테 파실래요? 와인 가져오는 걸 깜빡했는데 근처에 와인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네요.”
에리카: “Sure. 어느 정도 가격대에 어떤 종류의 와인을 좋아해요?”
나: “우와, 고마워요! 15~20달러 정도면 적당할 것 같고 Merlot 품종이 좋겠어요.”
에리카: “하나 사다놓죠.”

집에 도착하니, 식탁 위해 내가 원하던 와인과 와인잔 두 개, 그리고 와인 따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깨끗한 침대, 타월, 그리고 손님용 샴푸와 비누. 깨끗하게 닦여서 놓여진 접시들… 뭐 하나 나무랄 것이 없었다. 우리만의 정원이 있었고, 게스트룸도 에리카의 하우스와 떨어져 있어서(엄청나게 큰 집이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었다. 나와서 1분만 걸으니 아름다운 바다가 나왔다.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다.

또 한 번 우리를 감동시켰던 것은 아침 식사. 다음날 아침 몇시에 무엇을 먹고 싶은지 적어서 밖에 걸어놓으면 갖다준다고 하기에 걸어놓았는데, 내가 지정한 정확한 시간에 에리카가 아침 식사를 가지고 왔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배달해준 아침 식사

기분 좋은 경험과 추억을 남기고 집에 돌아오니 에리카로부터 이메일이 와 있었다. 나에 대해 리뷰를 남긴 것이다.

“I enjoyed hosting Sungmoon Cho and his wife. They seem like a very sweet couple and I would definitely recommend them to other Airbnb hosts. Great communication of arrival time, and they were incredibly understanding when I wasn’t able to be here at their desired check-in time.” (성문과 그의 와이프를 호스팅했는데 즐거웠어요. 매우 다정한 커플로 보이고, 당연히 다른 Airbnb 호스트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도착하는 시간을 정확히 커뮤니케이션했고,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제가 없었는데 정말 잘 이해해 주었어요.)

이를 읽고 즉시 나도 리뷰를 남겼다.

에리카에게 내가 남긴 리뷰

여기서 잠깐. 이런 서비스를 보면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집 주인 또는 집 빌리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지?” “과연 안전할까?” Airbnb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 가지 시스템을 통해서이다.

1. 프로필

집 소개페이지 옆에는 항상 아래와 같이 집 주인의 프로필이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를 호스트했던 에리카는 다음과 같이 소개를 올려 놓았다.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와 대학교 이름도 있다. 이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뢰가 간다.

집주인 에리카와 블레이크의 프로필. (출처: http://www.airbnb.com/rooms/44515)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아래 두 가지가 큰 도움이 된다.

2. 리뷰

아래와 같이, 그 집에 묵었던 사람들이 리뷰를 올리고 있다. Airbnb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졌던 실제 회원/고객들만 리뷰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거짓일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자세히 읽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파악이 된다.

에리카와 블레이크의 집에 묵었던 사람들이 상세하게 남긴 리뷰

안전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일수록 리뷰가 많이 달린 집을 선택할 것이다.

3. 페이스북 연결

페이스북 이펙트‘에서 설명하고 있듯, 페이스북의 가장 큰 힘은 회원들의 정보가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Airbnb에 페이스북으로 로그인할 경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선, 페이스북으로 로그인해서 집을 빌리겠다고 신청하면, 집 주인이 그 사람의 기본 정보를 볼 수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과 기본 프로필을 보고 나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쉬워질 것이다. 반대로, 페이스북으로 로그인한 상태에서 자기 집을 올리면, 페이스북 프로필에 있던 내용이 자동으로 들어간다.

페이스북 로그인하고 Airbnb에 내 집을 올리자 자동으로 들어간 프로필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등을 돌렸고, 심지어 이 회사에 투자한 폴 그래험(Paul Graham)조차 아이디어는 사실 마음에 안들었다고 했던 서비스. 지난 한 해동안만 800%의 성장을 이루었고, 지금까지 무려 160만일의 예약을 중계한 Airbnb는 어떻게 해서 탄생했을까?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의 강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주: TechCrunch] 말을 아주 재미있게 하니 직접 보면 제일 좋다.

이 비디오와 몇 가지 조사를 통해 재미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아래에 요약한다.

창업 배경

Airbnb의 공동창업자 브라인언, 조, 네이썬. (출처: WSJ)

창업자 브라이언과 조(Joe Gebbia)는 미국의 가장 명성 있는 디자인 학교 중 하나인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만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브라이언은 99학번, 조는 00학번이다 [LinkedIn 프로필]. 조가 먼저 창업을 제안했고 브라이언이 곧 따랐다. 브라이언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컨퍼런스때문에 호텔이 모두 차서 묵을 곳이 없었다. 문제를 인식한 것이다. 얼마 후 사업을 시작했고, 약간의 돈을 벌기 위해 공기 침대(Air bed)를 이용해서 위층의 남는 공간을 여행자에게 빌려주었는데 참 재미있었고, 이게 사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둘은 곧 Air Bed and Breakfast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사업을 시작했다.

슬픔의 참호 (Trough of Sorrow)

마케팅에 필요한 돈이 없었으므로 (두 사람 먹고 살기에도 벅찬 상태였음), 발로 뛰며 홍보를 했으나 좀처럼 트래픽이 늘지 않았다. 심지어 2008년에 월스트리트 저널과, 테크크런치도 소개되었으나 별로 반응이 없었다. 일시적으로 트래픽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이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곧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난 Airbnb가 단시간에 성공한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혀 그게 아니었다. 트래픽이 치솟기까지 무려 1,000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마켓플레이스‘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방을 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빌리는 사람이 왔다가 돌아가 버리고, 또 빌리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방을 올리지도 않는다. 전형적인 닭과 달걀의 문제 상황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Airbnb의 트래픽 증가 추이. 첫 3년동안 트래픽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출처: Quantcast)

라면 프로피터빌리티(Ramen Profitability)

고생하는 이 두 젊은이를 구출한 사람은 엔젤 투자 회사 “Y 컴비네이터“를 만든 폴 그래함(Paul Graham)이었다. 폴이 이들을 만나 투자를 한 후, 처음 했던 조언은 “라면을 사먹을 수 있을만큼만 돈을 벌어라“였다. 이 둘의 경우, 계산해보니 일주일에 1,000불을 벌면 아파트에서 내쫓기지 않으면서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1,000불 벌기. 이게 그들의 사명이었다. “라면 프로피터빌리티”는 폴 그래함의 “스타트업을 위한 13가지 조언” 중 아홉 번째에 등장하는 말이다. 정말 마음에 들고 공감이 간다. 나이가 들수록, 부양할 가족이 생길수록, ‘라면 프로피터빌리티’를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된다. 두 창업자는 싱글이었고, 라면만 먹으면서도 살 수 있을만큼 젊고, 건강했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무려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입이 없어도 꿈을 믿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Airbnb에서 전 세계 184개 나라 14,800개 도시에 있는 집들을 찾을 수 있다.

고객을 만나기

약 1,000일이 되던 때에,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폴은 그들에게 그들의 고객이 있는 곳, 뉴욕에 가야 한다고 했다. 수입이 없어 라면을 먹고 살던 이들에게 뉴욕에 가라니.. 그러나 폴의 조언을 따랐고, 뉴욕으로 날아갔다. 뉴욕에서 두 가지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하나는 저명한 투자자인 프레드 윌슨(Fred Wilson)을 만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고객을 만나고 웹사이트를 홍보하는 일이었다. 결국 프레드 윌슨에게 투자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 블로그에서 설명한다), 다른 중요한 사람을 만났다. 맨하탄에 멋진 아파트를 가진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Airbnb의 아이디어를 좋아했고, 곧 자신이 여행하는 동안 집 전체를 빌려주겠다고 Airbnb에 올렸다. 이것이 Airbnb의 사업 모델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그 전에는 주인이 있는 상태에서 방만 빌려주는 서비스였는데, 이제 집 전체를 빌려주는 사람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이 집이 매우 인기가 있었고, 웹사이트의 트래픽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뉴욕에서 자신의 집을 올렸다. 그리고 그 집을 이용했던 여행자들이 자신의 도시 또는 나라로 돌아가서 자기의 집을 Airbnb에 올렸다. 곧이어 유럽의 집, 성, 대저택 등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2010년 7월, 뉴욕타임즈에 기사가 실렸다.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000일간 ‘슬픔의 참호’를 거친 이후 Airbnb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Airbnb에서는 심지어 이글루도 빌릴 수 있다. 하루 189달러.

아프리카 나이로비의 기린 서식지에 지어진 집도 있다. 하루 500달러.

‘고객을 이해하기’. 이 말은, 폴 그래함의 스타트업 조언 중 네 번째에 등장한다. 크게 공감한 말이라 여기 인용하고 번역한다.

“You can envision the wealth created by a startup as a rectangle, where one side is the number of users and the other is how much you improve their lives. [2] The second dimension is the one you have most control over. And indeed, the growth in the first will be driven by how well you do in the second. As in science, the hard part is not answering questions but asking them: the hard part is seeing something new that users lack. The better you understand them the better the odds of doing that. That’s why so many successful startups make something the founders needed.” (스타트업에 의해 창출되는 부는 사각형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한 축은 유저의 숫자이고, 다른 한 축은 그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가이다. 두 번째 축이 바로 당신이 제어할 수 있는 영약이다. 사실, 첫 번째 축은 당신이 두 번째 축에서 얼마나 잘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유저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이를 잘 이해할수록 더 잘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많은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이 창업자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유이다.)

오늘, 점심에 회사에서 한 동료가 내 자리로 찾아왔다. 돌아오는 독립기념일(7월 4일) 주말에 여행을 하려고 알아보던 중, 어린 아이가 있어서 부엌과 세탁기가 있는 곳을 찾아야 했는데, 모텔에 전화해보니 부엌이 있긴 하지만 아이가 시끄럽게 하면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므로 받아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전에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 Airbnb를 찾아봤고, 하루 100불 정도에 크고 멋진 집의 방 하나를 예약했다고 한다. 물론 부엌과 세탁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과연 나처럼 좋은 경험을 하게 될 지 궁금하다. 나중에 꼭 물어봐야겠다.

민박. 수천년 전부터 존재했던 사업이지만, 이렇게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런 서비스가 난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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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Amazon) 성공의 비결은 소비자 경험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오늘의 주제는 아마존(Amazon.com)이다. 내가 좋아하는 회사 중 Top 3안에 드는 회사이고, 내 재산을 불려주는 회사이기도 하다. 아마존에 대해서는 “아마존 유저 인터페이스 분석“이라는 주제로 작년 9월에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그 당시 150달러이던 주가는 이제 200달러를 넘겼다. 당시 675억달러이던 시가 총액은 이제 915억달러(약 100조원)가 되었다 (참고로 삼성전자 시가 총액이 현재 132조원이다).

2011년 5월 13일 기준 아마존 주가 (출처: Google Finance)

친구들, 회사 동료들과 아마존 이야기를 하면 모두다 한결같이 하는 대답은 “Awesome!(최고!), I love it!(사랑해!)”이다. 지금까지 예외가 없었다. 어떤 회사든, 어떤 서비스든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게 마련인데, 어떻게 아마존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회사가 될 수 있었을까?

‘성공 비결’이라는 주제로 지난번에 넷플릭스(Netflix)라는 회사를 다룬 적이 있는데 (넷플릭스 성공의 비결은 우수한 기업 문화), 마찬가지로 아마존에 대해서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이야기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트위터(@kyuclee)를 통해 아마존에 대한 자료를 발견했는데, 지금까지 본 아마존에 대한 분석 중 가장 좋기에 이를 기준으로 아마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72장짜리 슬라이드인데, 원본은 여기에 있으니 시간 되시는 분은 꼭 전체를 보시기를: Amazon.com: the Hidden Empire (아마존닷컴: 숨겨진 제국)

아마존, 알고 보면 거대한 회사다. 이베이보다 두 배나 크고, 페이스북보다 15배나 많은 직원을 가지고 있고, 구글보다 매출이 16% 많고, 월마트보다 더 큰 소비자 브랜드이다.

왜 가능했을까? 비전 때문이다. 1994년, 제프 베조스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았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이지만, 여기서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에 대한 소개를 잠깐 하겠다. 1964년생. 어머니가 10대에 임신해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년을 갓 넘겼을 때 부모님이 이혼했고, 다섯살 때 새아버지에게 입양된다. (스티브 잡스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그 역시 너무 어린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다른 집에 입양되었다.) 가족이 텍사스를 거쳐 플로리다에 이사한 후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했으며 컴퓨터 사이언스 학위를 받은 후 월 스트리트의 D. E. Shaw & Co.라는 금융회사에서 파이낸셜 애널리스트(Financial Analyst)로 일하다가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1994년에, 그가 서른 살이 되던 시점에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창업했다. 현재 아마존 주식의 20%를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주식으로 인한 그의 개인 재산은 현재 약 20조원이다.

TED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2003년에 “Next Web Innovation” 이란 주제로 했던 강연인데, 제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말을 재미있게 해서 한참을 웃으면서 봤다. 닷컴 버블 이후의 인터넷을 골드 러시 및 전기와 비교하며, 2003년의 인터넷 수준은 1908년의 전기 세탁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2003년이면 이미 한게임/넷마블 등이 히트치고 네이버가 잘 나가던 때였는데, 제프는 그 시대를 1908년과 비교한 것이다. 왜 아마존이 그 이후에 끝없이 개선되고 성장했는지의 답이 그에게 있다.

TED에서 강연중인 제프 베조스. (이미지 출처: http://www.trustthefedora.com/)

그리고 그 비전은 뛰어난 실행력과 혁신에 의해 실현된다.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아마존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공했다. 1. 낮은 변동비, 2. 실시간 최적화, 3. 프로토타입을 이용한 테스팅, 4. 전세계적인 시장, 5. 무제한의 재고, 6. 끝없이 개선되는 측정 지표와 이를 이용한 최적화

완전히 혁신적인 생각은 아니다. "더 싸게,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편리하게 물건을 팔고 소비자에게 배달해주자"

소비자에게 먼저 투자한다: 소비자에게 포커스하고 그들의 요구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 요구를 저렴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끝없는 혁신을 가져오는데, 1. 소비자 경험을 위해 원클릭 쇼핑과 프라임 멤버십을 도입했고, 2. 일대일의 개인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했고, 3. 구매 프로세스를 상세히 설명함으로서 신뢰를 쌓았다. 결국 아마존은 소비자의 '잠재 요구'를 충족시켜, 그들이 뭔가 온라인에서 사겠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가 되도록 했다.

참고로, 2010년 4월 아마존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 해에 세운 452개의 목표 중에서 무려 360가지소비자 경험(customer experience)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출처: Business Insider) 제프 베조스가 얼마나 이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는지, 그리고 지금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아마존 서비스를 경험해보면 그동안 투자해온 것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전 블로그에 이러한 소비자 경험을 간략히 정리해 두었다: 아마존 유저 인터페이스 분석

그 비밀 요리법은 바로 혁신적인 물류 시스템이다. 웹사이트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더 나은 소비자 경험을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한다.

그 결과는 경쟁사보다 싸게 제품을 제공하면서도 높은 마진을 남기는 것이다.

여기, 아마존이 인수한 회사 Diapers.com의 놀라운 물류 시스템을 보여주는 비디오가 있다. Kiva Robot 을 이용하여 자동화되어있다.

미국의 많은 성공적인 인터넷 기반의 회사가 그렇듯 (구글, 페이스북, 징가, 넷플릭스, 훌루, …), 아마존 역시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서비스를 사용하다보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매일 매일 개선을 이루어낸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나의 숨은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것을 보면 감탄할 정도이다. 아래 슬라이드를 보면 매우 초창기부터 이렇게 데이터 분석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데이터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 아마존은 1997년에 처음으로 A/B 테스팅 (두 개의 서로 다른 웹사이트를 만들고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후 만족도를 측정하여 반영하는 방법)을 시도했고, 2001년에는 배달되는 제품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또한, 아마존의 소비자 충성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아마존을 통해 구매한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구매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 중 한명이 바로 나다. 1년간 아마존에서 사는 제품이 100개가 넘는다.) 아마존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소비자 충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이 아래 세 장의 슬라이드에 소개되어 있다.

첫째 비결은 "반복 사용": A. 판매자는 왜 아마존을 이용하나? 1) 1억 3천 7백만의 소비자를 무시하는 건 말이 안된다. 2) 믿을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3) 아마존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B. 왜 소비자들은 아마존을 사용하나? 1) 생태계가 갖추어져 있다. 2) 각 사람들의 미디어 라이브러리가 저장되어 있다.

두 번째 비결은 "고른(seamless) 통합". A. 아마존이 어떻게 판매자들을 통합하는가? 1) 판매자 점수 모니터, 2) 저품질의 제품을 파는 판매자 차단. B. 어떻게 사용자 경험이 통합되어있는가? 1) 소비자 입장에서는, 개별 판매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 대부분의 제품에 대해 아마존 프라임 멤버들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무료 배송).

세 번째 비결은 "락인(lock-in)". A. 어떻게 판매자들이 락인되는가? 1) 판매자의 고객들은 사실은 아마존의 고객이다. 2) 판매자들은 소비자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3) 아마존과 거래를 오래 할수록, 그 수준의 서비스를 직접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어려워진다. B. 어떻게 소비자들이 락인되는가? 1) 킨들 이북은 아마존 자체 포멧이라 일단 아마존에서 구입하면 다른 기기로 볼 수 없다. 2) 아마존 프라임 멤버에 가입하면 (1년에 79불) 이틀 무료 배송 서비스를 받게 된다.

올해 47세의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 2010년에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6분 25초 지점부터 그의 연설이 시작된다. 10살 때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서 “It’s harder to be kind than clever (똑똑한 것보다 친절한 것이 더 여럽다)“는 원칙을 배우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로 뉴욕의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마존을 창업하게 되었는지, 어떤 기분으로 어려운 선택을 내렸는지 등을 설명한다. 연설 중 마지막 대목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와이프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당시 내가 존경하던 상사에게 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팔고 싶다구요. 센트럴 파크를 한참 걸으면서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듣던 그가 말했습니다. “That sounds like a really good idea, but would be even BETTER idea for someone who already didn’t have a good job. (그거 참 멋진 아이디어군, 근데 이미 좋은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일텐데..)” 그리고 48시간동안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은 싫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열정을 따르기 위해 가장 안전하지 않은 선택을 한 셈이지만, 저는 그 선택이 자랑스럽습니다. (중략) 시간이 지나 당신이 80세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조용한 방에 혼자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혼자 이야기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가장 간결하고 의미있는 이야기는, 결국 당신이 했던 선택들을 나열하는 것일겁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한 선택 그 자체입니다 (In the end, we are our choices).

자기 자신에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운을 빕니다. (Build yourself a great story. Thank you, and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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