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 November, 2011

안우성, 세계 4위의 미디어 회사 비아컴(Viacom)의 게임 사업 개발 매니저

오늘의 인터뷰, 안우성

안우성(LinkedIn, Twitter, 블로그),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여름이었다. UCLA Anderson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UCLA MBA를 지망하는 안우성이라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에, 어떻게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만나고 싶고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가 간략히 적혀 있었다.

당시에는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한 달쯤 지나 한국에 방문할 일이 있으니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둘 다 일정이 바빠 7월 초, 아침 8시 반에 서울대입구역 스타벅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말쑥한 외모에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분명히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훨씬 좋은 학교에 합격해서 UCLA에 안 온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다시 그에게서 연락을 받은 것은 몇 달이 지나서 이듬해 1월이 되어서였다. UCLA 앤더슨 스쿨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며, 감사의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었다. 몇 달이 지나 5월에 그가 LA에 도착했고, 나는 여름 인턴십을 위해 한창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학교 시작하기 전에 LA의 한 소셜 미디어 관련 스타트업에서 미리 무급 인턴십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가 시작되기도 전에 누구보다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소셜 미디어도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리더십 역할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이내 그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내가 2학년 때 학생회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차기 학생회장으로 당선된 마이클(Michael)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마이클: “성문, 혹시 우성 알아?”
성문: “응. 물론 알지. 그가 앤더슨 스쿨 입학하기 전부터 알았는걸”
마이클: “나 그 친구 존경해. 사실, 우성이 한국 학생들에 대한 내 이미지를 바꿔놓았어.”
성문: “무슨 이야기야?”
마이클: “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수줍어하고, 그렇게 활동적이지 않고, 더구나 리더십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서 하는 것을 못봤거든. 그런데 우성은 너무나 열심인데다가 각종 클럽에서 리더십 역할도 맡아서 하고 있잖아. 한국 사람들이라고 다 조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한거지.”

정말 그랬다. 그는 웬만한 미국 학생들보다도 열심히 네트워킹을 했고, 몇 달이 지나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리쿠르팅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알고 보니 우성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첫 이메일에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있다던 그는 네트워킹과 노력을 통해 미국 사람이라도 들어가기 힘든 매출 18조원의 기업 NBC 유니버설과 매출 40조원의 기업 디즈니에서 봄, 여름 인턴십을 했고, MBA를 마친 후에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비아콤(Viacom)니켈로디언 게임 그룹(Nickelodeon Game Group)에서 사업 제휴를 담당하고 있다. 니켈로디언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면 꼭 시청하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케이블 채널이다. 교육용 어린이 만화인 ‘탐험가 도라 (Dora the Explorer)‘가 니켈로디언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10년간 장기 방영하며 미국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스폰지밥(SpongeBob)‘ 역시 니켈로디언에서 만들었다.

미국의 인기있는 교육용 어린이 만화,

그는 또한, 내가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2008년 어느날, 앤더슨 스쿨의 학생 라운지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한 말이다.

형, 블로그 시작해 보세요. 정말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제가 했던 중 가장 보람있는 일 중 하나였어요.

그 말을 듣고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 때 그가 했던, ‘많이 배울 수 있고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토요일 점심, Burlingame 다운타운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성문: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탐험가 도라의 목소리가 들어간 GPS 기기

제가 하는 일, 즉 비즈니스 디벨롭먼트(Business Development)의 영역은 크게 라이센싱(Licensing)과 배급(Distribution)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라이센싱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이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배급은 남의 것을 내가 팔아줘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같이 컨텐츠를 가진 회사는 캐릭터, 게임 등의 라이센싱을 통해 주로 돈을 벌 수 있고, 그 중 저는 게임과 관련된 라이센싱을 담당합니다. 요즘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 또는 타블렛 게임에 들어가는 캐릭터 계약이 많습니다. 동시에 제가 배급 계약도 담당하는데, 니켈로디언이 미디어를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V 채널, Nickelodeon.com, 또는 게임 포털 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채널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거나 컨텐츠를 공급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디어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이와 같이 IP(Intellectual Property)와 미디어 채널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디즈니 하면 대부분 미키 마우스를 먼저 떠올리고,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팔아 돈을 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오는 매출은 사실 크지 않습니다. Disney.com, ESPN, ABC 등 자체적으로 보유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 다음 수익원이 테마 파크, Pixar와 같은 영화사 등이지요. 결국 자신의 컨텐츠를 팔아서 돈을 벌고, 또 남의 컨텐츠를 실어줘서 돈을 벌고, 이렇게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강력합니다. 예를 또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회사가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봐요. 그리고 그 회사가 기존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저희가 가진 캐릭터를 사용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저희 캐릭터를 썼다면 그 장난감을 어디에 광고할 때 가장 효과가 클까요? 그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바로 저희 웹사이트와 TV 채널이겠지요. 그런 식으로 두 가지 계약을 할 경우 수익이 극대화됩니다. IP와 미디어를 보유한 회사만 할 수 있는 일지이요.

성문: 학부 때 전공이 건축학이었는데, 지금 전혀 다른 길로 왔네요?

제가 사실 과학고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3년동안 과학을 공부하고 나니 다른 쪽이 하고 싶어졌어요. 피를 봐야 하는 의사가 되기는 싫었고,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있고 너무 공학적이지도 않은 건축학을 공부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더군요. 당시가 IMF 직후라 주택 프로젝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설계도의 아파트만 계속 짓고 있었고, 게다가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연륜이 필요해서 어릴 때는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구요.

반면, 인터넷 분야에서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이면 즉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엔씨소프트에서 운 좋게 병역 특례로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일을 해보니 정말 재미도 있고 가능성도 높은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인생의 모토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자”인데, 꼭 집을 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말고도 온라인 공간을 통해 즐거움을 전달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엔씨소프트에서 처음 맡은 일은 해외 온라인 게임을 수입해서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리니지 2 팀의 다섯 번째 멤버로 합류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2003년 당시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서 만든, 굉장히 덩치가 큰 프로젝트였는데, 마침내 게임이 성공적으로 런칭되어 한 달에 100억원 이상을 벌게 되었고, 온라인 게임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지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런 점에서 엔씨소프트에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성문: 그 다음에는 일본에서 일을 했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그렇게 3년간 리니지 2 등 온라인 게임의 마케팅을 담당하던 중, 일본 지사장님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서 인터뷰를 했고 일본에 가게 됐습니다. 일본 지사에서는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블로그였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이런 개인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당시 일본의 전설적인 VC인 조이 이또(Joy Ito)디지털 거라지(Digital Garage)를 공동창업하고 나서 초창기 블로그 플랫폼인 무버블 타입(Movable Type), 테크노라티(Technorati) 등을 들여오며 블로그가 큰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미 2007년에 일본 사람들이 트위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저는 2007년부터 트위터를 쓰기 시작했지요. ‘오타쿠’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각 영역마다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매우 세분화된 취미를 남들에게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그런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문을 가지게 됐고, 한 번 게임 전문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일하면서 블로그를 키워갔고, 마침내 그 블로그가 일본 내에서 게임 카테고리 1등을 했습니다. 일단 그러한 미디어 채널을 가지게 되니 게임 홍보도 훨씬 쉬웠고, 유저 충성도를 관리하기도 쉬웠지요.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셜 미디어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미래가 가게 될 방향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성문: 미디어플록(Mediaflock)이라는 블로그 사이트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원래 2000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2005년에 일본에 가서 블로그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자, 먼저 블로그에 대해 이해를 해야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으면서 일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당시 가까운 친구였던 김동신(현재 파프리카 랩 CEO)에게 같이 시작하자고 했지요. 당시 한국에서는 TNC(테터 앤 컴퍼니, 후에 구글에 인수됨)의 노정석 대표님이 만든 태터 툴즈에 전문 블로거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블로그에 달린 광고 수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또, TNC의 김창원 공동 대표님이 일본 지사를 운영하기 위해 몇 달간 일본에 나와 있었는데, 그 분과 대화하면서 블로그에 대해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블로그를 통해 멋진 사업가들도 알게 됐고, 저와 다른 공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그 이후 보람을 느껴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성문: 엔씨소프트 일본 지사에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MBA를 결심했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건가요?

우성: 소셜 미디어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미래의 큰 변화(Next Big Thing)는 미국에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게임, 포털 등의 선진 서비스를 한국과 일본에서경험하고 나니, 이를 미국에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마침 아내가 USC에서 박사 과정중에 있어 LA에 가고 싶었고, UCLA를 선택했습니다. 실리콘 밸리와 할리우드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어요.

성문: 특이하게도 MBA 시작도 하기 전에 LA에 위치한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일을 했었네요. 어떤 계기였나요?

아내 때문에 LA에 좀 일찍 도착했습니다. 아무 일도 안하니 일주일만에 심심해지더군요. 학교 수업 시작할 때까지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공짜라도 좋으니 스타트업에서 한 번 일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LA지역 스타트업들이 꽤 있더군요. 무조건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없을 때는 webmaster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SocialVibe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거기서 약 4개월간 인턴을 했습니다. 다행히 그 회사가 잘 커서 지금은 페이스북 공식 광고 벤더가 되었습니다. 이런 미국의 스타트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인들도 들어가기 힘든 디즈니에서 여름 인턴십을 했는데, 비결이 뭐였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네트워킹의 결과였습니다. MBA 시작하기 전부터 네트워킹을 했지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고, 사람들을 만나 저에 대해 소개하면서 피드백을 받으니 도움이 많이 되어서 피칭 연습도 할 겸 해서 계속 만났습니다. LinkedIn에서 랜덤하게 찾아서 연락하기도 했구요.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한 명씩 만났었네요. 1학년 때 50명도 넘게 만났고, 그러는 과정 중에 많은 사람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만났지만, 나중에는 나를 옹호해줄 멘토(Mentor)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9년 당시 잡 마켓(job market)이 안좋았기 때문에, 여기 저기 찌르는 대신 나는 더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 왔던 것을 레버리지(leverage)할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어 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에서의 경험도 일일이 다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할만한 경력을 간추려서 이야기했고, 전에 했던 일과 앞으로 하려는 일이 다른데 그 둘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잡 디스크립션(job description)을 자세히 보고, 제가 하는 말이 회사에서 원하는 것과 일치하도록 스토리도 만들었구요. 디즈니에서 채용 공고가 나자 그 회사의 임원들과도 네트워킹을 했고, 결국 세 명의 임원이 저를 추천해줬습니다. 입사해서 보니 해당 사업 부문(디즈니 산하 5개 사업 부문 중 하나인 인터렉티브 미디어 그룹)에 MBA 인턴이 한 명 더 있었는데, 헷지펀드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와튼 스쿨 출신의 미국인이었습니다. 매니저에게 저를 왜 뽑았냐고 물어봤더니 “부사장급(VP) 임원들이 추천하기에 면접을 봤는데 만나보니 추천할만한 사람이어서 채용했다”고 하더군요. 네트워킹의 승리이지요. (웃음)

디즈니에서 일하면서도 어떻게 미국 내에서 인맥을 넓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디즈니 타이틀을 달고 많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2학년 잡 써치(job search) 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풀타임(full time) 잡은 어떻게 찾은건가요?

네트워킹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 소개가 없이는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때였지요. 친구들과 함께 회사 방문 이벤트를 계획하기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터뷰를 하기도 하구요. 사실,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의외로 한 리크루터가 저를 연락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LinkedIn에서 제 경력을 보고 연락을 해왔는데, 그 때 LinkedIn의 힘을 알게 되었지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컨텐츠가 어떻게 하면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할 겁니다. 아이패드, 킨들파이어 등등 새로운 기기가 생기고 미디어가 TV에서 컴퓨터로 옮겨가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안에 핵심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컨텐트(content)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것을 알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요. 예를 들어, 똑같은 스타일만 즐기고 똑같은 댄스 가수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과 음악을 알고 즐기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호창성 대표의 viki.com은 아주 훌륭한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정말 재미있는 한국과 일본 컨텐츠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전파해주고 있잖아요.


아래는 그의 링크드인(LinkedIn) 프로필 페이지에 있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 마디 추천사이다. 컨텐츠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에, 그가 앞으로 어떤 사업 개발을 통해 컨텐츠의 가치를 높여 나갈지 기대가 된다.

“Woosung is an exceptional business development executive. Prior to Woosung’s arrival at Nickelodeon Games, I had tried unsuccessfully for several years to close a deal with Shockwave/Nickelodeon. Shortly after Woosung joined the Nickelodeon team, he constructed deal terms that met both Nickelodeon’s needs as well as Disney’s, and thus, we were able to close the deal. He is a skilled negotiator, knowledgeable in the gaming space and a pleasure to work with.”, Elliot Solomon, Director Business Development, Disney Online Studios. June 25, 2011

“안우성은 아주 뛰어난 사업 개발 담당자이다. 그가 니켈로디언 게임즈에 합류하기 전에, 나는 몇 년동안 이 회사와 계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니켈로디언과 디즈니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계약 사항을 도출했고, 그 결과 계약이 맺어질 수 있었다. 그는 노련한 협상가이고, 게임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일하기에 즐거운 사람이다.” – 디즈니 온라인 게임 사업 개발 부장, 엘리언 솔로몬. 2011년 6월 25일.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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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왜 강할까

미국은 왜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을까? 실리콘밸리에 살면 누구나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곳에서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길래 매일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이 생겨나고, 또 그것이 큰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일까? 앞서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쾌적한 날씨와 환경, 그리고 인재들이 모이는 곳

이 곳에는 인재가 많고, 인도, 중국,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인재들이 끝없이 몰려온다. 스탠포드, 버클리 대학에 미국 전 지역, 세계 각 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그들 중 다수가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는다. 매우 쾌적한 기후를 가진 동시에 사람들의 학력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세상을 바꾸는 회사들이 모인 곳, 인재들이 이런 곳을 마다할 리가 없다. 결국, 우수한 사람들 주변에 우수한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의 천국

엔지니어에게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는 것 같다. 이 곳에는 엔지니어들이 존경을 받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글래스도어(Glassdoor.com)에 가면 각 회사별로 엔지니어들의 연봉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중견기업에서 일할 경우 대개 초임이 7, 8만달러에서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곧 10만달러(약 1억 천만원)가 넘어간다. 물론 살인적인 물가와 높은 세금과 의료보험료를 생각하면 10만달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높은 연봉은 아니지만, 스톡 옵션, 주식 등으로 훗날 벌 수 있는 돈과 주 40~50시간이면 충분한 근무 조건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한 때 샌디에고에서는 “퀼리어네어 (Quillanair) 라는 말이 유행했다. 샌디에고에 본사를 둔 퀄컴(Qualcomm)이 주식을 상장하면서 부자가 된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대부분은 엔지니어다. 미국에서는 입사할 때 많은 경우 주식을 받고, 회사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스톱 옵션을 받기 때문에 회사가 좋은 가격에 상장되면 대부분 큰 부자가 된다. 구글이 상장할 때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수십억, 수백억원의 돈을 벌었다.

물론, 해고의 위험도 있다. 2009, 2010년, 경기가 좋지 않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많은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또 다시 많은 인재들이 외국에서 몰려온다.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강한 처벌

미국은 기본적으로 지적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곳이다. 법으로 보호가 잘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미국 교육 시스템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만든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사하면 안된다고 철저히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적 재산을 귀하게 여긴다. 따라서 대기업이고, 자원이 많다고 해서 섣불리 다른 작은 회사가 만든 것을 무단으로 똑같이 만들지 않는다.

복제할 수 있다 해도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오라클은 지적 재산권 침해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어서, 어떤 사람이 만든 코드라도 함부로 가져다 쓰거나 복제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다. 회사가 도덕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침해 사실이 밝혀 지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뿐더러 소송이라도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중국의 가짜 애플스토어에 대한 이야기가 월스트리트 저널 첫 지면에 나오면서 미국인들한테 엄청난 웃음거리가 된 사건이 있었다 [주: WSJ].

갑을 관계는 분명히 존재, 그러나 파트너십에 가까움

한국에는 SI(시스템 통합) 사업이 많고,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철저히 ‘을’에 해당하는 SI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엔지니어가 탄생하기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도 그런 갑을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돈을 주는 쪽은 무조건 갑이고 돈을 받는 쪽은 을이다. 그래서 을 입장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대접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수직적 갑을 관계라기보다는 파트너십에 가깝다. 제품, 서비스와 돈을 교환하는 관계일 뿐인 것이다.

인터넷, 모바일 창업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출구(exit)가 있기 때문

왜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모바일 관련 창업이 많이 일어나고 그 중 많은 회사들이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까? 그 이유는 출구(엑싯:exit)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엑싯(exit)이란, 회사가 성장해서 매각되거나 주식 시장에 상장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회사를 판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엑싯이 일어나면 창업자를 비롯한 초기 멤버들은 큰 돈을 벌 수 있고, 이는 다른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앞다투어 창업을 하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인수 합병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기업들이 작은 회사들을 큰 프리미엄을 주며 한 달이 멀다하고 인수한다. 그러한 기술을 만들 줄 몰라서가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다른 회사가 만든 기술을 인력 투입이나 자본 투입으로 복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공채 제도가 없고, 직원들의 회사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회사들이 1년 내내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회사 인수를 하면 정말 우수한 인재들을 회사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베테랑 투자가들의 뒷받침

회사 초기에 입사해서, 주식 상장을 통해 큰 돈을 번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플로리다에 집을 하나씩 사서 여생을 즐기고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 투자자로 변신했다. 그 중 한 명이 크리스 사카(Chris Sacca)이다. 자신이 번 돈과,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2009년에 투자 회사를 만들었고 그 이후 트위터, 고왈라, 인스타그램 등을 포함하여 34개의 쟁쟁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주: CrunchBase]. 법학을 전공했고, 기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그야말로 베테랑 투자가이다. 바로 앞에서 설명했듯, 이 곳에서는 엑싯(exit)이 많이 일어나므로 투자한 돈이 투자가들에게 되돌아올 기회가 많다는 것도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정부 자금 지원 등의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현재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만을 흉내내려 한다면 실리콘밸리의 시스템을 절대로 복제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난다 하더라도, 결국은 부실한 회사들만 잔뜩 생겨나고 그 회사들이 제대로 성장을 못해서 결국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매일경제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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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스탠포드대에서 거왕 교수와 함께 음악과 기술의 만남을 연구하다

오지은 (페이스북 프로필) 씨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2009년, 스탠포드 대학 내의 한인 크리스천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기술을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분야였다. 나중에 자세히 물어보니, 당시에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아이폰을 이용해서 연주회를 열기도 하고 아이폰과 관련한 음악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참 신기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녀에 대해 다시 듣게 된 것은 2009년 10월의 뉴욕타임즈의 기사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당시 아이폰용 ‘오카리나 앱‘과 아이패드용 ‘매직 피아노‘로 인기를 얻었던 앱을 만든 거왕(Ge Wang) 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첫 번째 제자라고 했다. 거왕 교수에 대해서는 에스티마님이 쓰신 ‘소리로 벽을 허문다‘ 및 조선일보의 “아이폰으로 클래식을 연주하다“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설명하는 오지은씨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 등 아이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 기기를 이용한 콘서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동시에 박사 학위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그녀를 스탠포드 대학 앞의 유니버시티 카페(University Cafe)에서 만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패드로 연주중인 오지은씨

성문: 거왕 교수가 지금은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는데, 어떻게 해서 그 교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나요?

지은: 저는 학부를 스탠포드에서 했는데, 전공이 인지 과학(Symbolic Systems)였습니다. 이 전공에서 컴퓨터 음악(Computer Music)도 한 분야로 다루어집니다. 학부 때 ‘음악 및 음향학 컴퓨터 연구 센터 Center for Computer Research in Music and Acoustics(CCRMA)‘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하나 듣게 되었는데, 원래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다 연구 분야가 재미있어 보여서 이 분야에서 연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성문: 제가 보니 음악에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12살 때부터 플루트 연주를 시작한 후 다양한 그룹에서 활동하고, 워싱턴 주에서 개최한 컨테스트에서 플루트 솔로로 3등을 해서 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지은: 6학년 때 처음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플룻은 제 학업 생활의 ‘완벽한 보완제’가 되어준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숙제를 하다가 지치면 플루트 연습을 하곤 했지요. 음악을 전공 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던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플루트 연주를 통해 다양한 음색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제가 경험하고 있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음악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 음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문: 미국에는 언제 오게 되었나요?

지은: 초등학교 5학년때 가족과 함께 워싱턴 주로 왔습니다. 거기서 고등학교 때까지 있다가 8년 전에 스탠포드에 진학하면서 이 동네로 이사왔어요. 대학원을 결정할 때에 다양한 경험을 위해 동부로 갈까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CCRMA가 박사과정을 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믿었고, 또 실리콘 밸리의 특별한 이노베이션 에너지를 느끼면서 지내고 싶어서 이곳에 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성문: 박사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앉아서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지은: 맞아요. 콘서트 기획도 하고, 남들이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도 하고, 때로는 청중들과 함께 음악을 맞춰보기도 하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박사 과정은 없을 것 같아요.

성문: 거왕 교수님은 최근 어떤 일을 하셨고, 요즘 어떤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지은: 모바일용 음악 앱 개발 회사 Smule을 운영하는 것 이외에,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거왕 교수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 할 때 ‘프린스턴 랩탑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드셨구요. 그래서 이 학교 오셔서는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것 뿐 아니라, 제스처를 사용해서 연주한다든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같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제시하는 아주 튀거나 실험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지원해 주셔서 랩 분위기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성문: 이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생각하는 주제를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지은: 논문은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데요, 지금까지는 모바일 뮤직 및 소셜 뮤직, 즉 모바일 기술을 사용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고, 더 많이 상호 작용을 하는가를 연구했는데, 앞으로는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비디오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얻어내는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특히 저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에 관심이 많아요. 상황에 따라 웃음 소리가 달라지거든요. 이런 것은 실험실의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관찰하거나 분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클라우드에 있는 수많은 비디오들을 활용하면 새로운 방식의 연구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과 기술이 어떻게 조합될 수 있을까? 이러한 조합이 어떻게 사람이 음악을 생산하고 공유하고 소비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까? 앞으로 오지은씨가 하는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서 변화를 일으킬 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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