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 March, 2012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Kstartup 소개

작년과 올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났다. 이 곳에서 사업을 하려고 계획중인 분, 여기서 투자를 받으려고 하시는 분, 기존에 있던 사업을 이 곳으로 확장하려는 분 등 다양했는데, 전에 게임빌에 있을 때 미국 사업 진출을 위해 분투했던 경험과 최근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만나고 관찰하며 알게 된 사례들을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필요한 경우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와서 시도하지만 게임빌, 컴투스, 넥슨, NHN, NC Soft, Webzen 등의 게임 회사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 곳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스가 흔하지 않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서울스페이스(Seoul Space)AppCenter의 주요 멤버들이 모여 만든 KStartup에 대해 알게 되어 같이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인큐베이터가 좋은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여기에서 소개한다. 서울 스페이스를 공동 창업한 데이빗 리(David Lee)‘구글의 진짜 힘 (Google’s Real Power)’이라는 비즈니스위크 기사를 통해 유명한데, 구글 초기 멤버 출신들의 모여 만든 투자 회사 XG Ventures의 창업 멤버이다. XG Ventures에서는 그동안 Aadvark, AppJet, Chartboost, Plusmo, Posterous, Tapulous, Twidvid 등 25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했으며 그 중 무려 10개 회사가 페이스북, 트위터, 디즈니, 그루폰, 구글 등의 회사에 성공적으로 인수되었다. 그는 현재 SK 텔레콤 벤처스의 투자 파트너로 있다. 그는 또한 폴 그래함(Paul Graham)이 만든 실리콘밸리의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Y Combinator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Limited Partner). 서울스페이스의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리처드 민(Richard Min)에 대해서는 “서울스페이스, 한국의 실리콘밸리 될 것”이라는 이 기사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한편 AppCenter는 아주대 컴퓨터공학과 변광준 교수와 KAIST 컴퓨터공학과 김진형 교수가 창업했으며, 컨퍼런스와 창업보육센터 등을 통해 그동안 많은 스타트업을 지원해왔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고 여기에서 투자를 받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인맥인데, KStartup에는 기꺼이 유능한 창업가들을 돕고자 하는, 이 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멘토(mentor)들이 많이 연결되어 있어 그들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회계적, 법률적 자문도 받을 수 있다.

현재 첫 번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원하는 모바일 및 인터넷 서비스, 게임 분야 스타트업들의 접수를 받고 있는데,  선정되면 100일동안 개발 공간과 멘토링을 지원하며, 초기 투자금 지원도 가능하다. 이 곳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마감은 이번 일요일(3/25)이다.

Kstartup 프로그램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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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 이머징 기술 그룹의 사업 개발 매니저, FounderSoup의 공동창업자 노범준

노범준 (Ron Bumjoon Ro)

시스코의 이머징 기술 그룹 (Emerging Technologies Group, ETG)에서 사업 개발 매니저(Business Development Manager)로 일하는 노범준씨(영어 이름 Ronald Ro.  LinkedIn, Twitter)는 요즘 바쁘다. 지금 맡은 사업부가 $100M (약 천억원)의 매출을 낼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처음 시작한, 공동 창업자들을 만나게 해주는 FounderSoup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FounderSoup은 최근 TechCrunch에서 기사화된 바 있다)

스탠포드에서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서로 만나는 가장 큰 모임, FounderSoup (출처: TechCrunch)

이머징 기술 그룹이란 시스코의 내부 창업 그룹에 해당하는데, 시스코의 미래를 먹여 살릴 Billion Dollar Business (1조원 규모 사업)를 찾아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코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고 MBA 졸업자들이 문을 가장 많이 두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은 회사에서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시스코의 원격 화상 회의 시스템(Cisco Telepresence)이 바로 이 그룹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그룹은 화상 회의 시스템을 개발한 노르웨이의 탠버그(Tandberg)를 인수하며 업계의 일인자로서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시스코의 화상 회의 시스템

노범준씨는 ETG 그룹 내의 미디어 경험 및 분석 비즈니스 유닛(Media Experience and Analytics Business Unit)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사업부는 시스코가 요즘 힘을 많이 쏟고 있는 비디오 분야 사업을 위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시스코는 어제 약 4조 4천억원을 주고 비디오 기술 회사인 NDS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가 시스코와 인연을 맺기 전의 과정이 재미있다.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그는 보잉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품 기획에서 출시까지의 사이클이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 이내 관심을 잃었다고 한다.

처음 노이즈 컨트롤 부서의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그런데 2001년 당시 디자인을 시작한 드림라이너 787 모델이 지금 출시됐어요. 무려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죠. 보잉에 있는 동안 SCM(Supply Chain Management)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이 분야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졌고 박사 학위를 받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미시건 대학 산업 공학 석/박사 통합 과정에 진학했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미시건에 가서, 처음 1년은 창업을 한다며 공대 친구들 뿐 아니라 남쪽 캠퍼스에 있는 경영대 및 인문대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그러다가 프랭클 펀드 (Frankel Commercialization Fund)라는 스타트업 투자 펀드에 대해 알게 됐죠. 그 때 우리가 새로운 통계학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피치했거든요. 그 일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 결과로, 박사 진학 시험을 볼 준비를 하나도 못하는 바람에 박사 진학을 포기했어요. (웃음)

결국 석사만 마치고 그는 학교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으로 간다. 삼성 SDS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스템 통합(SI) 부서에서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시스템 개발업무를 맡았는데, 이내 적성에 맞지 않는데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기술 전략팀이다. 여기서 그는 또 하나의 일을 벌인다.

저의 골은 딱 하나였어요. ‘가장 삼성이 하기에는 힘들면서 내가 재미있게 일을 해볼 수 있는 것을 만들자.’ 그래서 생각한 게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에 삼성 아일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2007년에 처음 세컨드 라이프를 접하고, IBM, 오라클 등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당시 삼성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지만 한 번 추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 당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에버랜드, 호텔신라, 삼성 전자 모바일 사업부, 디지털미디어 사업부, 제일기획 등을 돌아다니며 삼성아일랜드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3차원 인터넷 가상세계 활동’들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전략기획실 가서 발표를 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당시 한 임원이 발표를 듣더니, “노범준씨는 가상 세계를 믿나요?”하셨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아, 역시 안되는건가…’ 그러더니 그 분이 이내 하는 말씀이 “나는 환상 세계를 믿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하시는거에요. 하하하.

곧 기획과 개발을 할 수 있는 팀원들을 모았고 세컨드 라이프에 섬을 30여개를 샀다. 거기에 유저들이 아바타로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에버랜드의 차세대 가상 라이드, 휴대폰 모양의 전시장 등을 지었다.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삼성 4년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고 한다.

삼성에서의 병특이 끝나면서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됐어요. 미시건에서 같이 창업했던 친구들이 프랭클 펀드의 지원을 받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랭클 펀드 생각이 나서 그 곳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에게 연락을 했어요. 거기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일단 MBA에 진학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미시건 겨울의 추위와 다섯달 동안 녹지 않는 생각나 고민이 됐죠. 미시건을 또 가야 하는가 (웃음).

그는 미시건 MBA에 진학했고, 이내 프랭클 펀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스코 ETG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거기서 MBA 1학년 후 여름 인턴십을 시작했다. 인턴하는 동안 지금의 팀을 만났고, MBA 졸업 후에 시스코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시건 MBA에 있는 동안 그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동기였을까?

제가 농구를 좋아해서 MBA에 진학할 때 저는 인생을 네 개의 쿼터로 나눠봤어요. 많은 경우 세 번째와 네 번째 쿼터에서의 크고 작은 플레이들이 승부를 결정하죠. 그리고 하프타임 때 얼마나 팀이 전략적, 체력적, 정신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후반전을 잘 시작할 수 있고 그 탄력으로 결국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지가 결정되니까요. 저는 MBA 진학을 인생의 하프타임이라고 봤고, 이 시기 동안의 제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로 남기니까 알았던 것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구요.

프랭클 펀드에서 그가 한 일은 초기 단계의 회사들을 발굴하고 투자를 심사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을까? 한 번은 한 팀이, “우리는 아이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아이폰 앱을 만드는 팀입니다” 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제가 팀 리더였는데, 그 발표를 듣고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시장이 너무 작다’, ‘시장이 한계가 있다’ 였어요. 하하하. 모두 다 동의했어요. 아이폰 유저 숫자가 작았고, 그 가운데 아이가 있는 사람을 추려내면 시장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돌려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인사이트가 부족해서 생긴 부끄러운 일이죠.

그 때 두 가지를 크게 느꼈다고 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자는 것. 그러면, 창업을 꿈꾸는 스탠포드 학생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파운더 숩(Foundersoup)은 어떻게 해서 시작했을까? 그는 항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시스코의 그가 있던 그룹에 마이크 도시(Mike Dorsey)라는 스탠포드 MBA 학생이 인턴을 하러 왔다. 둘은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을 연결해주자’는 비전이 일치하는 것을 느꼈고, 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다른 스탠포드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엔젤 투자자인 론 콘웨이(Ron Conway)의 아들, 로니 콘웨이(Ronny Conway)도 합류했다. 그 결과가 바로 Founder Soup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행사를 거치며 스탠포드의 창업 열기를 한층 더 불러왔고, 그 안에서 팀도 여럿 탄생했고, 테크크런치의 주목을 받아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스탠포드에 인큐베이터(incubator)나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는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정의하는 이그나이터(igniter)는 없었어요. 즉, 벤처캐피털에 피치하는 것이 아닌, 재능을 가진 사람들(talent)에게 하는 것이죠. 일단 스탠포드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스탠포드에서 파운더숩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배운 노하우를 통해 그의 비전을 미국 내 다른 학교들과 다른 나라들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 StartWave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그의 생각을 공감하고 함께 일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그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그가 가진 큰 비전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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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대륙 마라톤을 완주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여성, 에린 스프라그


7개 대륙 마라톤 완주 후 기념사진

  • 전세계 7개 대륙 마라톤을 완주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여성
  • 마라톤을 통해 10만 달러(약 1억 천만원)를 모금하여 기부한 선구자
  • 행복한 가정에서, 동생 세 명을 돌보며 리더로서 자라온 첫째딸
  • 나의 개인 코치(Personal Coach). 스탠포드 MBA 내에서 나와 1시간씩 10주에 걸쳐 매번 만나서 나의 개인적 성장(Personal Development)을 도와준 내 인생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코치
  • 스탠포드 GSB 내에서 Wellness and Health Club을 만든 사람
  • 굴지의 프라이빗 에퀴티(Private Equity)이자 헷지펀드(Hedgefund)인 블랙스톤(Blackstone)에서 5년 가까이 근무했던 투자가
  •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 자전거 제조회사)에서 앞으로의 커리어를 이어갈 웰빙의 전도사
  • 누구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가진 불굴의 전사(Intrepid Warrior)

내가 기획하고 싶은, 세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 시리즈의 첫 인물로 주저않고 그녀를 선택한 이유였다.

산: 안녕하세요. 본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성장배경

저는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아버지는 형사, 살인사건 담당하는 형사셨고 어머니는 간호사셨죠. 아버지는 참 많은 재능을 타고난 분이셨고 어머니는 정말 경쟁적인 노력파였어요. 저는 적당히 좋은면만 배웠달까요. (웃음) 사형제 중 첫째로 집이 뉴욕 근처 산기슭마을로 이사가고 나서 항상 스포츠를 즐기면서 자랐어요. 축구, 야구, 농구, 등산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했죠. 그러다가 달리기와 사랑에 빠졌어요. 달리기는 다른 운동과는 다르게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단순하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는 5km, 10km를 주로 했어요. 고등학교 달리기 팀을 이끌기도 하고, 뉴욕 주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죠.

이런 저의 달리기는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하는데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달리기 대회에서 만난 하버드 대학의 육상 코치가 저를 적극적으로 어드미션 오피스(Admission Office)에 추천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죠. 돌이켜보면 제가 하버드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래 세가지 인것 같아요. 첫째는 학교 성적(Academic), 둘째는 운동(Sports), 셋째는 리더십 경험(Leadership experience). 고등학교 육상팀 주장과 같은 리더십 롤도 상당히 큰 역할을 해준 것 같아요.

대학생활 직장

하버드에서의 생활은 상당히 힘들었어요. 물론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제 인생 처음으로 맞는 도전의 연속이었죠. 공부 운동 할 것 없이 정말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했는데, 그만큼 많이 배웠어요. 정말 많이 성장한 기간이었던 듯해요. 전공은 역사(History)를 선택했어요. 제가 원래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남들이 하라고 하는건 억지로 더 안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한번도 안 해본 것을 하고 싶어 선택한 과목이 역사였는데 참 잘 한 선택인 것 같아요.

졸업하면서 블랙스톤(BlackStone)이라는 헷지펀드 회사에 취직했어요. 워낙 좁은 문인데다가 전공도 역사를 한 지라 모두가 힘들거라고 했지만, 면접 중 면접관과 정말 뭔가 통한 것을 느꼈고, 합격 소식을 들었어요. 제 가능성이 보였다고 나중에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약 4년 반동안 일했는데 참 즐거웠어요. 제 멘토, 상사, 팀원 모두가 정말 대단하고 똑똑하고 다들 너무도 좋은 사람이었죠.

일하면서 어떤 길을 갈까 고민을 참 많이했는데 결국 결론은 기업가 (entrepreneur)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더 새로운 도전, 안해본 도전을 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서부, 특히 스탠포드를 생각했어요. 동부에서만 자란 제게 서부, 그리고 실리콘 밸리의 세계는 가장 큰, 가장 해볼만한 도전의 장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스탠포드 MBA에 지원했고 여기까지 왔어요.

산: 참 인상적인 여정이군요. 마라톤을 비롯해서 스포츠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얘기를 좀 더 한다면? 

베이징 올림픽을 완주하고

예 저의 인생은 정말 달리기, 운동과 도저히 뗄 수 없죠.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모범 보이기” (lead by example)에요. 본인이 스스로 하지 않고서, 더 노력하지 않고서, 남들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이야기한다는 건 말이 안맞다고 봐요. 제게 운동은 그런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을 가르쳐주고 체화시킨 존재죠.

그 전에도 육상을 했지만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건 헤지펀드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였어요. 일단 시작하면 뭔가 큰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가는게 제 스타일인지라, 세계 전 대륙에서 마라톤을 하고 이러한 일을 널리 알려서 자선행사를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죠. 여자로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컸어요. 그리고 나서 모든 휴가를 마라톤에 쏟았어요.

그래서 웹페이지를 만들고 제 이야기를 실었는데 그게 http://intherunning.org/ 이에요. 차츰 알려지면서 참여하는 사람도 한 둘 더 생기고 기사도 많이 실리게 되고 점점 재미가 붙었죠. 결과적으로 2008년에 제가 전 7개 대륙에서 마라톤을 완주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여자로서 기록을 세웠을 때 최종적으로 약 10만 달러 정도를 모금하는데 성공했어요. 거의 모두가 소액 모금이라서 더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돈으로 전 세계적으로 건강과 웰빙(well-being)을 타게팅(targeting)한 약 10개의 자선행사를 벌였어요.

산: 정말 대단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스가 있었다면요?

2010년 봄, 스탠포드 MBA합격소식을 알고 나서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자전거 하나만 들고 떠났어요.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8,000 마일(약 13,000km: 서울과 부산간 거리의 30배)을 종단하는, 4개월간의 세계에서 가장 긴 자전거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죠. (자세한 정보는 http://www.tourdafrique.com/) 4년 넘는 직장생활하면서 상당히 기력이 소진해 있었는데 뭔가 재충전을 하고 싶었어요. 비행기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죠.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직장도 그만두고, 지금 나는 무얼하고 있는지. 참 묘하게 저 자신을 더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래 Erin. 집중하자. 내 인생의 전환점(Epic Moment)이 될 경험일거야! 이렇게 되뇌었죠.

아프리카 자전거 투어 당시

그리고 이 4개월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죠. 정말 단순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자전거에 올라서 저 자신과 자연과만 대화했죠. 그 순간 너무도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인생의 수만 가지 고민과 상념이 다 사라지고 몸이 너무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죠. 제게 있어서 건강과 웰빙(Health and Wellness)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준 시간들이었어요. 그리고 제 인생의 모토가 된 ‘불굴의 전사(Intrepid Warrior)’에 대해서도 발견한 순간이었죠.

산: Intrepid Warrior라. 그게 죠?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수단을 지나던 날이었어요. 전체 투어중에 가장 힘든 날이었죠. 정말 정말 힘든 루트였어요. 평지나 포장된 도로는 잘 가겠는데 비포장 산길이라 넘어지기를 반복했죠. 저 뿐만 아니라 전문 자전거인들도 그 날은 정말 고전했어요. 어떻게든 빨리 오늘의 경주를 끝내자는 마음 뿐이었죠.

포기할까 정말 수없이 고민했어요. 투어를 시작하면서 제 목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였죠. 하루하루 정해진 레이스가 있는데 한번이라도 그걸 채우지 못하면 완주하더라도 전체 레이스를 마친 것과는 다르거든요. 그래도 10분이 멀다하고 넘어지니 정말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름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제 마음속에서 저도 모르게 갑자기 “Intrepid Warrior (불굴의 전사)” 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너무도 생생했던 순간이라 그 때 당시의 시간,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너무도 생생히 기억나요.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속으로 계속 되뇌었죠. ‘난 Intrepid Warrior다! (Erin, I am intrepid warrior!)’ 그러자 도저히 알 수 없는 힘이 샘솟았어요. 거짓말처럼 전 무적의 전사가 된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죠.

결국 그날 저희 그룹 전체는 레이스를 끝내지는 못했어요. 수단 군경에 의해서 단체로 캠핑장으로 이송됐죠. 결과가 어떻게 됐건 그건 제게 더이상 중요한게 아니였어요. 그날 이후로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모토가 되었죠. “Intrepid Warrior”

제가 Intrepid Warrior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메세지는, 실패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그걸 즐기는 삶이에요. 우리 부모님 세대, 즉 베이비 붐 세대(Baby Boomer), 인터넷 전에 단편적이 성공을 쫓아온 세대들에게 있어서 인생과 성공이란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봐요. 선형이죠. 쭉 앞으로 나아갈 뿐이죠. 한 걸음씩, 한 계단씩 올라가고 성공의 길이 정해져 있죠.

반면 Intrepid Warrior 는 정해진 길을 거부해요. 지겨워하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인생은 선형 라인을 따라가는게 아니라 수많은 점을 찍으며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새로운 시도로 또 하나의 점을 찍고, 계속 실패하고 계속 도전하고. 그렇게 수많은 점을 찍으면서 결과적으로 회귀선을 그려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가파른 선이 나온다고 봐요. 재미도 있고, 도전도 되고, 결과적으로도 더 충만한 삶. 그게 Intrepid Warrior의 삶이에요.

스탠포드 MBA(GSB)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로고

스탠포드 MBA(GSB) 생활을 하면서 이 개념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조금씩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도 좋아해주고 공감해주고 같이 누려줘서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에요. 사람들이 이 개념에 공감해주고, Intrepid Warrior로 변모해 가는것을 보는게 제게는 정말 둘도 없는 벅찬 감동이지요.

산: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오네요. 정신적으로 정말 성숙해 보이시던데,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그런 강함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살면서 공부, 즉 아카데믹(Academic)한 능력을 기르는 연습을 항상 하죠. Academic Learning이 마치 교육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잖아요. 감정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배움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더 관련된 강좌도 생기고 학문도 생기고 강조되어 가는 추세인 것 같아요. 즉 감정 학습(Emotional Learning)에 대해서도 많이들 이야기가 되고 있죠. 스포츠를 하면서 육체적 학습과 훈련(Physical Learning and Training)에 대해서도 모두가 그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구요.

그러나 정신 학습과 훈련(Mental Learning and Training)에 대한 강조는 정말 부족한 것 같아요. 정신도 육체처럼, 학문처럼, 갈고 닦을 수 있고, 훈련시킬 수 있고,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정신적 강함(Mental Strength)도 기르는 것이 가능하단 얘기죠. 스포츠와 정신적 건강(Mental Health), 그리고 실제 업무 성과 (professional outcome) 사이에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어요.

정신 훈련방법. Flow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

정신 건강 및 수련을 위해서 중요한 부분 몇가지를 공유하고 싶어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에게 도전이 되는 정도(Difficulty)와 자신의 능력(Ability)이 적절히 조화된 부분을 찾아가는 거예요. 둘 중 하나가 너무 커지면 충분히 도전이 되지 않고 지루해지거나, 너무 벅차서 포기하게 되고 말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는 것이 핵심이에요.

실패를 해보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죠. 실패가 없다면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실패를 즐길 수 있어야죠.

웃음과 강요된 즐거움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힘든 길을 나아가려면 순간의 성공이 아닌 지속적인 재미가 필요한데 유머와 억지 웃음은 감초같은 역할이죠.

마지막으로, 돌아보기(Reflection). 지난 여정을 돌아보고 긴 호흡으로 천천히 나아갈 수 있는 미덕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전 항상 명상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제게 훨씬 큰 힘과 에너지를 주죠.

산: 정말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것 같은데 실패의 경험도 있나요?

수없이 실패했죠. 성공한 경우보다 수십배는 더 실패한거 같아요. 정말 최근에 큰 실패를 경험했어요. 바로 2012년 겨울에 있었던 일인데 전 아르헨티나의 “Aconcagua” 등반에 도전했죠. 고지가 눈앞이었어요. 정상이 보였고, 느낄 수가 있었죠. 한걸음에 닿을 듯 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도 지쳐 있는걸 알았죠. 전 과감히 등을 돌려 내려왔어요. 분명 실패였죠. 그러나 후회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당당히 실패를 맞이할 수 있었던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해요.

산에서 내려오고 나서 아버지께 이 실패를 바로 이야기했어요. 제게 아버지는 이런 도전의 멘토와 같은 분이죠. 아버지께서는

“그래 그럴때도 있지. 잘했어. 그러나 다음번에 다시가서 산을 정복할거지, 에린?”

“아니 아빠. 나는 다시 가지 않을거야. 난 이미 산을 느꼈어. 난 이미 도전했고 실패했어. 그걸로 됐어.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해. 반복하는것보단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너무나 많은데, 갔던 곳에 다시 가는건 너무 재미없잖아?”

제게 실패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시작이죠. 그게 Intrepid Warrior의 삶이라고 봐요.

산: 앞으로의 비전을 말씀해 이야기해주세요.

제 다음 여정은 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라는 자전거 만드는 회사에서 사람과 제품을 경영(People and Product Management)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특히나 여성들이 자전거,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도록 많이 돕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Intrepid Warrior가 되기 위해 도전하도록 돕고 싶어요. 글도 쓰고, 블로깅도 하고, 강연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고, 같이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러면서요.  그 이야기는 제 홈페이지, Intrepid Warrior에 실을 생각이에요. 아직은 거의 든게 없지만 앞으로 많이 채워갈테니 응원해주세요.

Intrepid Warrior 홈페이지 배경사진

산: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루에 한가지씩, 조금은 두려운 일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크게 무서운 일은 말고 조금씩 편안한 영역(Comfort Zone)를 넓혀가는 거죠. 저요? 저는 오늘 정말 안 친한 교수와 면접을 잡았어요. 하하. 좀 두렵긴 한데, 뭐 이런게 사는 재미 아니겠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에린과 비를 맞으며 같이 달리기를 했다. 갑자기 내 삶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라. 과연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런 자신감을 심어주며 살고 있는지. 한국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그녀의 미소에서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정신적 성숙을 본다. 그녀의 여정이 정말 기대된다.

아르헨티나의 Aconcagua 등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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